<모금실무자의 윤리적 딜레마에 관한 연구> 중에서

이민영(고려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윤민화(이화여자대학교사회복지전문대학원 박사)

 

“한국 사회의 모금실무자들은 어떤 윤리적 딜레마를 경험하고 있을까?”

우리의 연구 질문이다.  윤리적 딜레마를 논의 할 때 자주 사용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딜레마적 상황, 좀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일까?
딜레마적 상황, 좀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일까?

 

[그림1]의 상황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차가 달리고 있다. 그 기차는 5명이 일하고 있는 철로로 돌진하고 있다. 당신이 레버를 당기면 1명이 일하고 있는 선로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어떻게 하겠는가?  

[출처] 마이클 샌델 (2010)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기관사인 당신은 레버를 당겨 한 사람을 구하기보다 다섯 사람을 구하는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가능한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다시,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그림2]의 상황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5명이 일하고 있는 철로로 돌진하고 있다. 당신 앞에 그 기차를 멈출 수 있을 만큼 큰 사람이 서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출처] 마이클 샌델 (2010)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이때는 다섯 사람을 구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일부러 밀어서 죽게 하는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무리 명분이 옳다하더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라는 원칙을 지키고자 하기 때문이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해야 하는 일, 이렇게 선택하자니, 저것이 걸리고, 저렇게 선택하자니 이것이 걸리는 딜레마적 상황이 늘 우리 삶에 도사리고 있어, 진정 옳은 선택을 해 나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상황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일까?를 늘상 궁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국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은 해야 하는 것이며, 그 선택은 결국 사람의 생각과 의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모금 현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모금 현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딜레마 상황에서 모금실무자이자 전문가로서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문제 해결(선택)의 과정과 결과가 달라진다 할 수 있겠다.

 전문가의 윤리적 딜레마란?

“만족할만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문직으로서 지켜야 하는 윤리적 의무 혹은 책무가 상호 충돌할 때 어떠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출처] 김기덕 (2002) 사회복지윤리학. 나눔의 집

 

우리 연구자들은 모금실무 현장을 달리고 있는 기차에 타고 있다. 기관사로서 혹은 문제 상황에 직면한 선로 위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모금실무자들이 얼마나 궁리하고, 애쓰고 있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고자 한다.

 

모금액 vs 모금가치

때 마침, 기차 안에서 광고가 시작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화면에 지나간다. 전쟁과 기근으로 아프고 배고픈 아이들. 파리들이 앉았던 자리에 초점 잃은 눈동자가 클로즈업 된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서로 건넨다.

“꼭 저렇게 보여줘야 될까?”

“많은 사람들을 기부에 참여시키려면 동정심을 자극해야 하잖아?”

“정말 저렇게 까지 해서 모금을 해야 하는 건가?”

“사람들은 저렇게 해야 지갑을 연다는 데?”

“언제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그 아이들의 ‘눈물’로 움직여야 할까?”

 

여기서 딜레마 상황은 모금을 통해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아이들의 존엄성을 해쳐서는 안된다는 원칙과 많은 기부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원칙이 충돌하고 있다. 대다수의 모금기관들이 두 번째 원칙을 우선하고 있는 상황에서 첫 번째 원칙을 지키고자 하는 기관들은 ‘모금액’보다 ‘모금가치’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조직의 사업과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모금액이 중요한 것임은 분명하다.

 

누구로부터 모금하느냐

어느 정차역에서 만났던 실무자가 이런 질문을 한다.

“좋은 기부자와 나쁜 기부자가 있을까요?”

“기부자가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떤 마음으로 후원금을 내게 되었는지 다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요?”

“좋은 돈 나쁜 돈이 있을까요?”

 

여기서 딜레마 상황은 어떻게 누구로부터 모금하느냐에 대한 가치갈등이다. 대부분의 조직들은 내부의 모금원칙으로 사행산업, 주류, 담배회사의 후원금은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기관이 내부적으로 몇몇 원칙을 가졌다 하더라도, 대다수 개인과 기업기부자들이 모호한 영역에 존재하고 있다. 또한 개인 기부자들이 어떻게 돈을 벌어서 기부하게 되었는지 모금기관이 다 파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질문하고 답하다 보면, 결국 좋은 돈 나쁜 돈이 아니라 ‘돈은 같은 돈’ 으로 정리할 수도, 정리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무언가 어느 정도의 기준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 무언가가 하늘 위 구름처럼 남아 있는 것 또한 모금 현장의 현실이지 않을까? 싶다.

 

모금실무자들과 함께 길찾기

앞으로, 또 어디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이번 연구는 한국사회 모금활동의 현실적 ‘정의(justice)’를 찾아 길을 떠나는 기차여행이고, 우리는 아직 기차 안에 있다. 종착역에 당도하기 전에 거쳐 가야 하는 많은 역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아마도 그 사이 사이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할 갈림길 앞에서 고뇌의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현장의 모금실무자들과 함께 그 길을 함께 가보려고 한다.

함께 가는 그 길 너머, 좀 더 가까워졌을, 좀 더 선명해지고 있을 그 종착역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