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에 세금 혜택을 주는 세 가지 이론적 근거

 

Rob Reich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

Stanford University

 

* 이 글은 2016년 연말 기부문화총서로 번역되어 발행될 예정인 ‘Giving Well’에 수록된 논문 중 하나를 요약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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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란트로피와 채러티는 인류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사람들은 수천 년간 자기의 돈, 자산, 시간을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했다. 현대에 좀 특이한 관행은 여기에 세금 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기부금 공제를 시작한 것은 채 백 년이 되지 않는다. 필란트로피가 인센티브(성과보수)라는 규제력을 지닌 프레임으로 구축된 현재의 관행은 규범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변칙적인 상황이다.

이전에도 미국은 사람들이 돈이나 재산을 기부하는 자유를 보호해왔지만 기부를 한다고 인센티브를 주지는 않았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오른다. 왜 우리는 개인의 기부금에 인센티브를 주고 있는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이것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람들이 돈을 쓰는 자유를 얼마나 제약해야 하는가? 사적인 부(재산)으로 공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국가에 해가 될 수도 있다. 사례를 보자. 오래전 로마에 기근이 들었을 때 이를 공적으로 해결할 자원이 부족하자 스프리어스 멜리우스라는 한 시민이 자기 사재를 써서 사람들을 먹였다. 이에 사람들은 감흥을 받았고 이사람의 인기가 급상승하게 된다. 그러자 악이 더 크게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평의회에서 이 사람을 처형했다고 한다. 이 사람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두려웠을 것이다.

자신의 돈을 쓸 자유를 규제하는 것에 관한 질문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정부는 기부에 대해 세금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기부를 전면금지하기도 한다. 자유국가에서 기부에 대한 기본 전제는 개인이 소유물을 원하는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의로운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왜 이런 제약이 필요하고 허용 가능한지 설명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 마찬가지로, 개인이 돈을 쓰는데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왜 바람직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기부금 공제의 정당성은 무엇인가. 기부금은 정보 보조금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세금으로 써야 할 돈을 기부금으로 썼기 때문에 세수를 보조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국가가 보조하지 않았는데, 현재 미국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자유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니다. 2005년 기부금은 2,500억 달러가 넘어 400억 달러의 세수를 지출했다. 미국은 왜 쓰지 않아도 될 세금을 쓰는가?

이에 대한 정당성에는 세 가지 근거가 있다. 첫째 적정한 과세표준을 계산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세금감면은 보조금이 절대 아니다. 둘째, 세금감면은 기부금이 아니면 국가에서 제공되지 못할 공익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효과적인 자극을 준다. 셋째, 세금혜택은 민주주의가 번영하는 가운데 다원화된 시민사회를 지원하기 위한 바람직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세금중심의 근거

이 첫 번째 정당성은 공제는 보조금이 절대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신, 기부자를 예우하는 공정하고 적정한 방식이다. 공제는 세제 시스템에 내재되어있다. 윌리엄 앤드류는 개인의 과세소득을 적절히 규정하기 위해 공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개인의 과세표준은 개인적 소비와 부의 축적에 따른 것이므로 기부금은 과세기준에 포함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부는 사적이고 배제적 소비를 공적이고 비배제적인 소비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 소비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공제는 사적 소비나 부의 축적 이외의 모든 소비에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리스 비커도 비슷한 주장을 했는데, 개인의 이득이 될 수 있는 자원의 사용을 포기한 것이기에 기부금은 소비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보조금 중심의 근거와는 반대로 세금 중심 정당성은 기부자에 대한 공정한 대우에 초점을 맞춘다. 기부금으로 발생한 재화나 서비스를 주장하지 않는다. 세금중심 정당성에 대한 비판에는 네 가지 논리가 있다.

첫째, 상식 수준에서 어떤 개인이 자기 소유물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그것을 사치품을 사든, 좋은 곳에 쓰던 어쨌든 그것은 소비라는 것이다.

둘째, 기부자가 기부하면 어느 정도, 아니면 매우 많은 이들을 얻는다는 것이다. 기부하면 “warm glow(기분 좋아짐)” 또는 이타적 행위가 주는 정신적 이득이 있다.

셋째, 개인적인 부의 축적이나 소비가 아닌 것에 공제해야 한다면 월마트의 노조탄압을 위해 기부한 개인도 공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론적 논의를 현실로 옮겨 살펴보면 기부자들이 기부를 통해 프리미엄 고객들이 누리는 경합제나 배재제를 구입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예를들어 문화예술 분야에 기부하면 반대급부로 좋은 좌석을 받는다던가, 자녀가 있는 공립학교에 기부해 그 학교의 교육의 질이 높아지면 그 자녀가 혜택을 누리는 식이다.

보조금 논거

기부금 세금공제 혜택에 대한 전형적인 방어논리는 국가가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함으로써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을 완수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직접 하는 것에 비해, 인센티브를 제공을 통해 (민간단체가 활동하는 것이) 좀 더 큰 사회적 가치 생산을 자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조금은 직접적인 세금 사용과 재정적으로 동등하게 간주한다. 시민들의 기부가 그들의 과세대상 소득에서 공제받도록 허용한다면, 국가는 조세수입을 포기하는 것인데, 이는 모든 납세자가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기부금에 대한 세금공제보다 사회적 목표달성 정도가 크다면 기부금에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은 옹호될 수 있다.

보조금 논리는 기부자에 대한 공정한 혜택이라는 관점에서 기부의 수혜자들, 그리고 기부 때문에 생기는 좋은 것들로 초점을 바꾼다. 그러나, 미국에서 보조금이 제공되는 방식, 즉 소득공제가 모든 기부자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느냐는 비판에는 취약하다. 첫째, 세금감면은 항목별로 납세신고를 하는 30%에게만 적용된다. 표준공제를 받는 70%의 납세자들은 많은 기부금을 냈더라도 혜택에서 제외된다. 보조금 지급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둘째, 누진과세체계에서 소득공제는 정의상 과세구간 변동과 연계되어 있다. 부자일수록 기부에 의한 비용절감 효과가 크다. 학자들은 그 결과 수입이 높을수록 선행의 비용이 낮아지는 “역전효과”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역자주. 소득공제의 경우. 소득세율 8% 구간의 가난한 홍길동과 소득세율 45% 구간의 놀부가 똑같이 10만 원을 기부했다고 했을 때, 홍길동은 8천원의 세금혜택, 즉 보조금을, 놀부는 4만 5천 원의 세금혜택(보조금)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네이글-머피의 논문의 비판과는 또 다르다. 이들은 보조금 논거 자체가 문제라고 보지는 않았다. 이들은 현재 보조금의 지급되는 방식인 세금 공제를 비판했다. 즉, 보조금 제공방식의 개선으로 앞에서 제기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납세방식에 따른 공제차별도 그냥 모두에게 확대하면 된다 있다. 혹은 소득공제방식을 세액 공제로 대체할 수도 있다. 

(*역자주. 세액공제로 바뀌게 되면, 현재의 한국과 같이 소득세육 8%의 홍길동과 45%의 놀부가 똑같이 10만 원을 기부했을 때, 둘 다 기부금의 15%인 1만5천 원을 환급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보조금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위해서는 보조금이 만들어내는 공공선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효율적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부금/세금 사용이 둘 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할 때, 우리는 기부금에 대한 보조금이 “재무부의 효율성”을 갖는지 물어볼 수 있다. 기부금에 대한 보조금이 연방 세금보다 큰 효과를 낸다면 보조금은 재무부로서 효율적이다. 경험적 연구에 따르면, 소득공제는 재무부에 효율적이다. 비록, 우리의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우리가 재부무의 효율성 관점이 아니라 기부금 수령단체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공공선 자체를 측정하게 되면 다음의 세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첫째, 미국은 매우 다양한 분야의 공익단체가 기부금을 받을 수 있게 허락하고 있다. 어떤 분야의 활동은 다른 시민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교회는 기부금을 받고 세제 혜택을 줄 수 있는데, 무신론자도 보조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회에 기부하게 되는 셈이다. (역자 추가. 이것은 무신론자의 손해를 기반으로 종교라는 전체 가치에 이득을 주는 일종의 제로섬 상황을 만든다.)

(*역자주. 사회적으로 손실을 만들지는 않는 선에서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논거에 기반을 두어) 보조금을 정당화하는 것은 두번째 문제를 일으킨다. 소득공제의 수혜자는 고소득자에 편중된다는 것이다. 부유한 개인들이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지만(소득대비 비율은 높지 않지만) 더 많은 보조금 혜택을 받게 된다. (역전현상) 즉, 2십만 달러 이상을 기부하는 사람이 전체 기부금 공제의 30%를 받고, 7만5천 달러 이상의 기부자가 전체 공제의 65%를 받는다.

금권주의적 편향은 문제이다. 부유한 사람의 관심사에 사회적 재원이 편중되는 것은 빈곤층에게 불리할 수 있다. 그러나 부유층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공재를 만들기 위해서 기부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체 비영리 수입의 절반 이상을 벌어들이는 병원이나 대학은 비용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다원주의 논거 

다원주의 논거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우리가 다양성, 지방자치, 다원주의적 연합과 관련된 헌법을 민주주의 활성화의 기반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비영리 기관이라는 것이 연합적(시민으로서 참여하여 함께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면, 다양한 비영리에 대한 민간기부는 시민사회를 증진하고, 나아가 자유민주주의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기부금을 받아서 어떤 사회적 이익을 만들어내는가가 아니라 다양한 단체의 생성과 유지 자체가 중요한 목적이 된다. 시민단체가 생산해내는 세부적인 것들이 아니라 ‘시민사회 그 자체’가 사회적 이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는 여전히 보조금 이론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보조금의 효율성을 따질 필요가 없다. 심지어 재무부의 입장에서 완전히 손실로 계산되는 비영리의 활동/서비스라 할지라도 다원주의 논거에 따르면 그 보조금은 의미가 있다. 물론 비효율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원주의적 논거를 수용하기 위해서 꼭 효율적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즉, 이것은 근본적으로 토크빌적인 주장이다. 활발하고 다양한 시민사회는 민주주의 발전의 기본 조건이다. 이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보조금에 대한 다원성 논거는 수많은 비판에 부딪힌다.

첫째, 자유에 대한 보호는 연합적 삶에 대한 제도적 보장으로 여겨왔다. 여기에 꼭 보조금이 필요한가? 토크빌이 미국을 투어했을 때는 그 어떤 세금공제도 없었다.

게다가 다원주의적 논거는 충격적인 역사적 근거와 마주치게 된다. 지난 백 년 간 한 치의 과장도 없이 미국에서 비영리 기관의 증가와 기부금 세금공제와 함께 시민의 참여와 연합적 삶이 감소하는 것이 함께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Robert Putnam의 저작에 따르면, 전문적으로 운영되는 비영리단체의 존재는 시민사회를 석회화(활력 없이 굳어지는 것)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만약 미국의 납세자들이 민간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수천만 달러의 돈을 사용해왔다면, 우리는 그로 인해 시민사회의 발전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어떤 추측도 하지 않으려 한다. 보조금이 없었더라면 시민 참여와 연합적 삶의 감소가 더 심했을 수도 있다. 아직 어느 것이 사실인지 정리되지 않았다. 

아름다운재단은 <기부문화연구소기금>을 기반으로 한국 기부문화 발전에 필요한 전문적이고 실질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