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이 펄펄 내리던 24일 오후, 권찬 사무총장은 아름다운재단 옥상에서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하얀 눈이 자신의 몸에, 머플러에, 그리고 옷깃에 좀 더 머무르길 바라면서 말이죠.

‘시인의 아들, 글로벌기업 홍보맨, 비영리조직 수장…’

연결 고리 없어 보이는 이 단어들은 한 남자를 지칭합니다. 바로 아름다운재단의 권찬 사무총장입니다. 2018년 6월 4일에 취임한 그는 뻔한 것은 펀(fun)하게, 비영리 한 것은 영리(smart)하게 바꾸려고 노력하며 달려왔다고 합니다. 3시간여 동안 낭만과 이성의 대화가 오갔던 권 사무총장과의 인터뷰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Q: 사무총장님을 직접 소개해 주세요.

일(에서 드러나는 성격) 자체가 저의 성격입니다. 어떤 일에 먼저 나서지는 않습니다. 큰일을 하려는 리더, 동료를 옆에서 도우려고 하지요. 하지만 반드시 누군가 무엇을 해야 할 때는 내빼지 않습니다. 모두 나서지 않고 뒤로 빠질 때 저는 그 자리에 남습니다. 그런 일들을 해내고 성과가 쌓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저의 목표는 세상을 재밌게 살고 남들도 나만큼 재밌게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또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하려고 합니다. 물론 강자와 약자의 기준에 오해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살다보니, 남들에게는 강자처럼 보이지만 제게는 약자로 보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돈은 많은데 외로운 사람’ ‘잘난 척하면서 스스로 부족한 점은 못 느끼는 사람’ 등이요.

Q. 아름다운재단에서 사무총장님의 업무는 어떻게 되나요.

아름다운재단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하는지 고민하는 일이라고나 할까요? 아름다운재단은 20년간 사회적 이슈를 발굴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역할을 해왔지만 우리사회에는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재단이 더 많은 이웃을 돕고 공익활동 저변을 넓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 구성원들과 논의하고 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합니다.

Q. 25년간 몸담았던 영리 분야를 떠나 비영리조직으로 옮긴 계기가 있으신가요.

비영리조직으로 오기 직전까지 IT 기업(한국 MS)에서 13년을 근무했습니다. 이곳에서 줄곧 ‘홍보맨’으로 살다가 마지막 5년은 사회공헌을 담당했습니다. 학부 때 사회사업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늘 마음 한켠에는 현장에 미안했고 이 일을 언젠가 해야 한다는 채무감도 있었어요.(24세 청년 권찬은, 첫 직장인 홍보대행사에 발을 들일 당시 자기소개서에 “20년 후 사회사업의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라고 적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사연이 겹치긴 했지만, 2012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해외부문 부회장을 하게 됐고 5년의 임기를 마친 이후 2018년 6월부터는 운명과 같이 아름다운재단의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 여러 비영리조직 가운데 아름다운재단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아름다운재단은 제가 가장 신뢰하던 비영리조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MS 재직 당시 아름다운재단으로부터 받은 감사패를 보이며) 이것 좀 보세요. ‘권찬’이라는 이름을 가리고 내용을 봐도 아름다운재단의 감사패인지 알게끔 씁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손편지를 부담되게 2, 3장을 길게 쓰는 것도 아니고 두 단락 정도 써서 보내는데도 이 안에 진심이 담겼고 신뢰가 가도록 써서 인상 깊었습니다.

사무총장님의 아버지는 시인입니다. MS 재직 당시 한글사랑동호회의 창단멤버로 활동할 만큼 한글 사랑이 유난히 남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에게 재단의 이름부터 남다른 아름다운재단은 일찍부터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위치(종로구 옥인동)가 개인적으로 의미 있기도 합니다. 이 동네에서 제가 전학을 왔지만 청운초, 청운중, 경복고등학교를 나왔어요. 어릴 적 살던 동네라 뒷골목까지 빠삭하게 다 알아요. 어머님이 “찬아, 파 한 쪽 사와라”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통인시장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어머님이 2017년 10월 돌아가셨는데 그 이듬해 그런 추억이 있는 동네(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죠. 아름다운재단은 제가 신뢰하고 좋아했던 재단이기도 하고 이런 낭만도 불러일으키는 곳입니다.

권 사무총장은 꽤 솔직했습니다. 비영리조직으로 오게 된 이유들을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포장하지는 않았습니다. MS를 마지막으로 한 25년간의 영리조직에서는 돈을 벌고 싶었고, 이후에는 뜻있는 동료들과 직접 사업을 하려고 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까요, 운명의 명령일까요. 사업이 실현되기 직전 번번이 비영리 영역과 연이 닿았습니다. 권찬 사무총장은 어느새 9년 차 중량급(혹은 중년급?) 비영리조직 리더가 되었습니다.

Q. 영리조직과 비영리조직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다년간 영리조직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했을 때, 영리조직에는 비영리조직이 벤치마킹할 만한 장점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제품과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그것이죠. 또한 제가 비영리조직의 일원이 되고 보니 기업과 사회공헌 파트너로 일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사업적 시너지는 물론 기업이 얻는 이익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될지 기업의 입장에서도 고려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직 구성원들과 기업 현장에 많이 다니려고 합니다. 페이스북과 MS를 비롯해 이미 여러 기업들의 사무실을 투어했습니다. 기업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해할수록 비영리조직의 사람들도 영리조직에 대해 많이 알아갈 수가 있습니다. 비영리와 영리가 서로 이해하려면 누군가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제가 그 다리가 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Q. 취임(2018년 6월 4일) 후 1년 8개월 정도 지났는데, 가장 잘한 일과 아쉬운 일을 꼽는다면요.

잘한 일 첫 번째는 ‘자율 출퇴근제’입니다.(름다운재단은 자유롭게 출근하여 스스로 8시간을 채우고 알아서 퇴근합니다.) 우리 스스로 믿음 없이 초를 재면서 현장에서 자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인권을 말하는 것이 이상해 보였어요.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맡겼더니 내부에서 신뢰가 생겼습니다. 바깥 현장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공채 시스템 개편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의 최근 몇 년간 기록을 살펴봤더니, 이직과 퇴사 등을 이유로 상시 채용이 진행되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있었습니다. 팀에 자리가 비면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해 그때그때 사람을 뽑았던 거죠. 저는 공채 시스템을 통해 매년 초 한꺼번에 뽑겠다고 했고 2년째 실천하고 있습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가 있어야 성취동기도 조금 더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생각해요. 조직 구성원들 역시 당장은 빈자리 때문에 불편하지만, 기다렸다가 새로운 구성원들을 함께 만나면 부족했던 자리들이 채워지는 데에 희열을 더 느낄 수 있고 이들이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될 겁니다. 또 특정 팀 소속으로 신입 직원들을 뽑지만 입사 후 이들을 바로 해당 팀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OJT(On the Job Training) 기간 초에 신입 직원들은 각 팀장의 브리핑 등을 들은 뒤 3주간 자신이 원하는 다른 부서에서 일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신입 직원은 본래 희망했던 팀으로 돌아가더라도 협업이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팀에서 직접 일을 하고 힘든 점 등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스템이 도입된 지 2년차 인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당장 사람이 필요합니다”라고 불평하던 말은 사라지고 기존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서 “저희도 (새 시스템에 따른) OJT를 다시 받으면 안 되나요?”라는 제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기존 사원들도 OJT를 다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결국, 조직의 토대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토대를 잘 잡기 위해 자율, 인사 같은 핵심적인 사항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Q. 그동안 만난 아름다운재단의 기부자들 가운데 기억에 남는 분을 소개해 주세요.

이 자리에서는 제가 못 만난 기부자, 그래서 너무 보고 싶고 그리운데 볼 수 없는 분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故 김군자 할머니요. 이분은 기부자이자 철학자이자 교육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군자 할머니를 설명할 때 ‘힘든 일을 겪은 와중에도 큰 금액을 기부하셨고, 그것을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고…’ 이런 말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이분의 기부에 대한 철학이 담긴 육성을 들으면 전율이 흐릅니다. 온유한 듯 빠른 듯, 그윽한 듯 넘치는 듯 다시 채워지는 듯 말이죠. 이분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그리움과 궁금증을 털어내면서 일해야 하는 게 정말 힘이 듭니다. 저도 김군자 할머니께 칭찬도 받고 싶고, 때론 잘못한 것에 대해선 혼도 나고 싶고, 교육자로서 철학자로서 주시는 말씀을 직접 듣고 싶고 그래요. 그래서 지난해 마지막 날에도 팀장 한 분과 조용히 퇴촌 나눔의 집에 있는 할머니 묘소에 인사를 다녀왔어요.

또 한 분은 심원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2000년 해외에서 모은 기부 관련 서적을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셨고요, 우리 재단이 국내 최초로 ‘기부문화연구소’를 개소하도록 도우신 분입니다. 20년 전의 기부 문화를 생각하면 사실 이런 생각은 불가능하거든요. 연말이면 일선 국군 부대나 양료원을 찾아 밀가루나 쌀, 라면박스를 전달하는 것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하던 시대에 “‘나눔’의 방법도 과학적이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김군자 할머니와 심원 선생님과 같은 분들 한분 한분이 NGO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의 기부 철학, 필란트로피(philanthropy)를 잘 이해하고 잘 전파하는 것이 저의 임무 같아요.

Q. 취임 초반 외부에서 보는 재단 인지도에 대해 고민하셨는데 지금은 해결이 되셨나요.

1년 전만 해도 아름다운재단의 활동이 외부에서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이름은 잊어도’나 ‘열여덟 어른’ 같은 캠페인으로 아름다운재단을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아졌고요, 그렇게 활동이 알려지다 보니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사업 문의와 기부도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부자들이 아름다운재단과 재단이 하는 일에 다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는 않을 겁니다.

Q. 아름다운재단을 줄여서 ‘아재’라고 부르기보다, 본래의 이름인 ‘아름다운재단’ 다섯 글자로 부르시기를 고집하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영리조직에서 브랜드의 가치를 지켜오는 일을 오랫동안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아름다운재단은 고유명사이고 하나의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라는 것은 누적된 가치의 총합입니다. 따라서 단지 편의를 위해 줄임말을 쓴다면 아름다운재단의 브랜드와 누적된 가치를 놓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같은 뜻으로, 아름다운재단의 공익활동 지원사업인 ‘변화의시나리오’도 마찬가지입니다. ‘변시’보다는 ‘변화의시나리오’ 고유의 이름으로 온전히 불러주실 때 공익활동 지원이라는 아름다운재단의 브랜드 가치가 생생하게 살아난다는 느낌이 듭니다.

Q. 2020년은 재단의 창립 20년차인 해인데요, 아름다운재단의 목표가 있나요.

지난해부터 사업목표의 키워드가 ‘성찰’입니다. 올해도 여전히 그 키워드를 넣었습니다. 제가 아름다운재단에 사무총장으로 입사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그래 아름다운재단이 ‘있었지’”였어요. 이런 과거형 같은 반응을 현재형으로, 다시 말해 “아름다운재단이 있구나!”로 끌어 올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현재형이 되면 다음은, (기부자들, 재단의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문하는 아름다운재단의 미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겸손하게 방향에 대해 함께 논해보려고 합니다.

또한, 사람들의 인식이 아름다운재단은 NGO와 함께 하는 중간자적 배분 기관, 협력기관으로 더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아름다운재단은 기부금을 배분할 뿐 아니라 사업개발을 통해 복지제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공익활동 저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분과 사회적 임팩트 전문가 둘 다 노리는 욕심 있는 탐험가의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Q. 아름다운재단은 ○○이다.

“아름다운재단은 ‘성장’이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늘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성취, 도전, 만족 등 좋은 말들이 많죠. 이 중에서 성장이란 단어를 택한 것은, 누군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무엇인가 성취할 때, 주변 사람도, 환경도 그 성취감의 이익을 얻으며 함께 성장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씨앗에서 싹이 나고, 나무가 되면 그 그늘 밑에서 여러 사람이 쉴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따라서 제가 말하는 성장은 실적이나 규모의 성장이 아니라 기회와 나눔의 성장 및 인식의 성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투명성을 넘어 다음 레벨에 도전할 것입니다. 누군가 이어 달리기를 하는 도중 바통을 떨어뜨렸다면, 아름다운재단이 그 바통을 주워 묻은 흙을 털고 다시 달리게끔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Q. 아름다운재단에서의 최고경영자 역할수행 점수를 스스로 체크해 주신다면요.

항목은 기빙코리아 2019: 비영리 조직 리더십과 투명성에 관한 심층조사에 나온 비영리조직 최고관리자의 역할 항목을 참고하였습니다. 권찬 사무총장은 흔쾌히, 그러나 진지하게 자가평가를 했습니다.

Q. 끝으로 기부자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칭찬도 필요합니다. (칭찬도 해주세요)”

권찬 사무총장 주요 경력

1987년 광고대행사 코래드 입사

1998~2011년 한국마이크로소프트(2006~2011년 사회공헌 담당 이사)

2012~2017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해외부문 부회장

2018년 6월~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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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아름, 장은지 (연세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