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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의 나눔 실천

몇 해 전 지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소개받아 읽게 되었다.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는 제목의 책이었다. 표지에는 “유엔 환경노벨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기후위기 시대의 해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호기심에 첫 페이지를 넘겼는데, 단숨에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단순히 기후변화와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딱딱한’ 책이 아니었다.

기후위기 시대의 해법?

“미세먼지부터 가뭄과 폭염, 슈퍼태풍, 식량폭동과 대규모 환경난민의 발생까지 코앞에 닥친 기후위기의 현실”을 간명히 그려내 보이면서도, 기후위기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문제의 해법을 명쾌히 제시하는 책이었다. 더불어 기후위기에 대응하여 지속가능한 공동체 모델을 만들기 위해 애써온 국제환경단체 <푸른아시아>의 지난 20년간의 열정과 고투가 담겨 있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푸른아시아

사실 이 한 권의 책이 계기가 되어, 나는 지금껏 몽골의 기후변화 피해 현장에서 한 마리 ‘벌새’처럼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친다. 기후위기 시대의 올바른 나눔 실천의 방식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분이라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한다. 현장의 문제에 대한 적합한 해법을 찾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책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본다.

타미르 남매 이야기

저자는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의 한 쓰레기 매립장에서 만났던 ‘타미르 남매 이야기’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쓰레기 수거 트럭이 매립장에 들어와 쓰레기를 쏟아내자, 그 쓰레기 더미에서 고철과 폐지, 빈병 등 폐품을 주우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폐품을 주우며 살아가는 ‘쓰레기 마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한 작은 어린 아이가 쓰레기가 쏟아져 내리는 트럭의 적재함 아래로 달려들었다. 값나가는 폐품을 남보다 먼저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멀찌감치 서 있던 한 여자 아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타미르!’라고 외치며 곁으로 뛰어갔다. 아이들이 트럭에 치이거나 쓰레기 더미에 깔리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어린 타미르는 뿌연 먼지가 흩날리는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양손에 든 빈병을 흔들어 보이며 웃고 있었다. 타미르의 누나는,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인지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타미르를 붙들고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쓰레기 마을에선 부모가 날품팔이 일을 나가면 남겨진 아이들이 이렇게 매립장에 나와 폐품을 줍곤 했다. 타미르의 가족은 몽골 남부 초원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가축들이 죽는 바람에 지난겨울 울란바타르로 올라왔다고 한다. 도시로 떠밀려온 대부분의 유목민들은 우리의 달동네 같은 ‘게르촌’에 정착한다. 불법 이주로 규정되어 수도와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게르촌에서 이들은 빈곤한 삶을 이어가야 한다. 초원의 유목민들이 왜 도시의 빈곤층으로 전락했을까? 삶의 터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몽골은 지난 한 세기동안 지구 평균 온도가 1℃ 오르는 동안 2℃가 올랐고, 그로 인해 전 국토의 78% 정도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초원이 사라지고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가축들을 기르기가 점점 어려워졌고, 이상기후로 인한 ‘조드’(Zuud)라 불리는 겨울철 한파까지 몰아닥쳐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가축을 잃은 유목민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밀려들게 된다. 타미르의 가족은 단순한 ‘도시 빈민’이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로 고향을 떠나게 된 ‘환경 난민’인 것이다.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해 피해를 받은 타미르 가족과 같은 환경 난민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쓰레기 마을의 상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들을 돕기 위한 국내외의 다양한 지원활동들이 있었다. 생필품을 지원하고, 유치원과 학교 같은 교육시설이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기후변화 피해 현장의 환경 난민들을 돕기 위해서는 단순한 긴급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긴급구호 현장에서 문제가 된 몇 가지 사례들을 언급한다. 2013년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해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CNN 뉴스가 타클로반의 한 초등학교가 물에 잠겨 갈 곳이 없어진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물에 잠긴 학교를 새로 짓도록 여러 곳에서 기금이 모여들었다. 전교생이 50명 남짓인 학교에 새 건물을 일곱 채나 한꺼번에 짓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에는 다른 필요한 것들도 많았는데, ‘학교 건물 신축용’으로 모아진 기금은 목적 외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 지역에는 도움이 절실한 다른 학교들도 많았는데도, 이 학교 말고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2008년 중국 쓰촨성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자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밀가루가 대거 투입되었다. 옷가지를 챙기지 못한 주민들을 위해 많은 옷이 구호품으로 들어왔다. 공짜 밀가루와 옷이 생기자 사람들은 구호품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고, 지역에 남아 있던 밀가루 가게와 국수 가게, 옷 가게들이 오히려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지진 피해로 어려움을 겪은 이후로 간신히 버텨오던 지역 경제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필리핀의 도시 난민의 재활과 자립을 돕는 캠프(CAMP)라는 시민단체는 미혼모로 구성된 환경 난민들에게 재봉 기술을 가르쳐 재활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기부자들에게 이와 같은 활동을 이야기하면 “이 사람들은 살 만한가 보네”라고 하며 돕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난민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장기적인 자립 프로그램 보다는, 당장에 눈에 보이는 지원 사업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재정 후원을 염두에 두다 보면 때로 선정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시대, 올바른 나눔의 방식은?

저자는 언론을 따라 긴급 구호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지원단체가 떠나고 난 후 남게 되는 현지 주민들의 의존성이나 지역 경제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치 않는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오히려 ‘우리 단체가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 난민을 돕는 나눔의 실천은 단순히 자기만족이나 온정을 베푸는 활동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동정심에서 시작하는 나눔은 도움을 받는 현장의 필요는 고려하지 않고 주는 쪽의 의사에 따라 지원한다. 그래서 ‘더 많은 지원(more aid)’에만 골몰하게 된다. 이와 달리 피해 현장의 ‘필요’에 관심을 갖는 나눔이 있다. ‘더 많은 지원’이 아닌, 결과가 ‘더 좋은 지원(better aid)’에 중점을 둔다. ‘필요에 따른 지원’은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중시하기에, 현장의 필요가 무엇인지 더 집중하게 되고, 현장의 필요를 채우는 지원활동을 펼친다. 그러나 ‘필요에 근거한 접근’ 방식도 결국 주는 쪽이 결정하는 구조여서는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현장의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과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 보다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적합한 나눔의 실천은 기존의 ‘더 많은’이나 ‘더 좋은’ 지원의 방식을 넘어설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 대안으로 저자는 ‘인권에 기반을 둔 접근(Human Rights-Based Approach)’ 방식을 제시한다. 주는 쪽이 아니라, 받는 쪽의 참여와 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받는 사람이 직접 지원활동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 주민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면 효과적인 지원도 가능하고 장기적으로 주민 자립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 푸른아시아

저자가 몸담아온 <푸른아시아>가 몽골에서 지난 20년간 실행해온 공동체 모델은 바로 이 인권에 기반을 둔 접근 방식을 따르고 있다. <푸른아시아>는 몽골의 사막화 피해 현장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나무를 심고 가꿀 뿐만 아니라, 주민들을 교육하고 조직하여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푸른아시아>의 공동체 모델은 주민 참여, 주민 의사결정, 주인의식이라는 3단계 원칙에 따라, 사막화 지역의 피해 주민들과 함께 나무를 심고 사람을 키우며 공동체를 조직하여 주민자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벌새 이야기

저자는 책의 말미에 200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왕가리 마타이 여사가 수상연설에서 언급한 ‘벌새 이야기’를 들려준다. 왕가리 마타이 여사는 사막화되어가는 아프리카 땅을 살리기 위해 3,0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숲에 불이 나면 모든 동물들이 도망가는데, 달아나지 않고 숲을 지키는 동물이 있다고 한다. 바로 벌새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이 작은 새가 숲에 불이 나면 개울가에서 작은 부리로 물을 머금고 와 불붙은 나무 위에 뿌린다. 숲을 집어삼킬 듯한 큰 불에 비하면 벌새의 행동은 하찮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벌새에게서 인류가 가야할 길을 찾게 된다. 모든 인류가 벌새가 되어 한 사람 한 사람 평생 나무 열 그루씩을 심는다면 기후위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기후변화로 재산을 잃고 떠도는 환경 난민들이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땅이 황폐화되면서 식량과 물 문제로 식량폭동과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참혹한 현장에서 대안을 찾고자 활동하는 사람들은 정말 한 줌도 안 되는 소수다. 저자는 나무에 물 한 모금을 뿌리려 날아다니는 벌새가 있기에 그래도 숲에 희망이 있는 것처럼,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드는 사람이 있는 한 기후위기 시대에도 지구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나무를 심는 일에는 온실가스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만드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나무 한 그루를 심고 가꾸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에도 푸른 나무 한 그루가 자라게 된다. 나무를 심으면서 생명을 살리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무를 심으면서 갖게 되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중요하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의식의 진화와 생활방식의 변화 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나무 10그루 심기 운동’을 제안한다. 나무 심기 운동을 통해 ‘파괴’에서 ‘살림’으로 인간의 의식을 진화시켜, 기후변화로 인한 ‘대멸절’의 위기 앞에 놓인 지구생명을 구하자고 호소한다.

신동현 |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사무차장

 
신과 구원, 존재와 진리 등 종교와 철학적 탐구에 관심하며 ‘지난한’ 삶을 살아오다, 기후위기 시대에 지구생명을 살리는 ‘긴급한’ 현장의 문제에 눈 뜨게 되어, 이제껏 몽골에서 기후변화 대응 및 사막화 방지 사업을 수행해오고 있다. 그래도 ‘옛 버릇’을 못 버려 짬짬이 ‘숲속의 대화’,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카페’ 등 종교와 철학을 주제로 ‘팟캐스트’를 운영 중이다. 비움과 나눔의 생태적 영성에 바탕한 지속가능한 공동체 형성이 미래 지구를 위한 ‘마지막’ 대안이라 여기며 그 길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