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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사이지만 믿기 어렵고 참혹한 사건입니다. 이 기사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고, 그 중 제페토라는 닉을 쓰는 분이 다음과 같은 시를 댓글로 남겼습니다.
광염(狂焰)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그 쇳물 쓰지 말고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주게.
가끔 엄마 찾아와 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자, 하게.
<그 쇳물 쓰지 마라>
프랑스 고전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는 “신문 읽기라고 불리는 가증스럽고 음란한 행위는 지난 24시간 동안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불행과 재앙들, 5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전투, 살인, 파업, 파산, 화재, 독살, 자살, 이혼, 정치인들과 배우들의 잔인한 검정을, 그런 것들에 신경도 쓰지 않는 우리를 위해 특별히 흥분되고 긴장되는 아침의 오락거리로 변형시키며, 이것은 카페오레 몇 모금과 대단히 잘 어울리게 된다”고 쓴 바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함께 눈을 뜨는 현대인인 우리는 종이신문을 보던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뉴스들을 접하며 삽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뉴스 중독’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현대인에게 뉴스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말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뉴스들은 우리 인생의 문제, 이웃의 비극, 사회의 가치를 공유하기보다 잠시 잠깐의 오락거리로 소비되는 것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짧은 기사의 내용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라, 지난 밤 생명을 잃은 누군가의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위의 시 ‘그 쇳물 쓰지 마라’는 그 기사가 당사자에게 어떤 일이었을지 생각하고 직면하게 만듭니다. 필자는 유골조차 남지 않은 아들의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의 마음에 아프게 공감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다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페토는 기사에서 생략되었던 사람의 얼굴과 공감의 여지를 불러옵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댓글이었어야 했나 봅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댓글과 본인 블로그에 쓴 글을 묶은 책은 2016년에 발간되었는데, 2020년의 기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아직도 비극은 우리 가까이에 있고, 그럴수록 익숙해지거나 무뎌져 가는 것은 아닐지요. 아름다운재단에서 십 수년 일하면서 ‘기부문화’란 ‘얼마나 많은 돈을 나누는가’ 라기보다는 ‘얼마나 공감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가’의 일임을 배우고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뉴스보기가 고통스러워진 요즈음, 차가운 신문 기사의 줄간에서 따뜻한 사람의 얼굴을 만나는 기쁨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2020년 코로나 시대, 또 다른 댓글시인을 기다리며 이 책을 추천합니다.
추신 1. 댓글시인 제페토는 본인의 실명이나 직업, 인적사항 등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댓글에 40대 노동자 누군가와 동갑이라고 밝힌 단서로 2010년대에 본인을 40대 직장인이라고 밝혔으니 지금은 40대 후반이나 50대에 접어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쉽게도 인터넷 검색으로는 시집 출간 이후에 행적을 찾기 어렵습니다. 추신 2. 신문에 대한 독설에도 불구하고 프루스트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제보(?)가 있습니다. “그는 신문을 매우 주의 깊게 읽었다. 그는 단신조차도 건너뛰지 않았다. 그의 상상력과 공상 덕분에 단신들은 하나의 온전한 비극적 또는 희극적 소설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심지어 모친을 살해한 아들 기사단신에 대해 그것이 인류 공통의 비극과 닿아 있는 사건이라는 긴 사설을 쓰기까지 했습니다. 당대의 제패토 시인이랄까요…. 추신 3. 알랭 드 보통은 “인간 경험을 축약해 버리는 것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하기만 하면 우리 자신을 인도할 수 있는 분명한 이정표들을 얼마나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지” 를 보여주기 위해 위대한 고전문학을 신문 단신으로 만들어 보여줍니다. 다음의 사연을 담은 고전이 어느 작품인지 아시겠는지요? 단신1. 베로나의 연인들의 비극적 결말. 연인이 죽었다고 오인한 후에 청년이 목숨을 끊음. 그의 운명을 확인한 후 처녀도 자살. 단신2.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열차 밑으로 몸을 던져 사망. 단신3. 젊은 주부가 가정불화를 이유로 프랑스의 지방 도시에서 비소를 음독하고 사망
추천글을 읽고, 제테토 님의 ‘그 쇳물 쓰지마라’ 시집을 바로 샀더랬습니다.
2020년을 사는 오늘에도 여전히 우리의 노동현장은 뜨겁고 무섭기만 합니다.
노동자의 ‘안전’, ‘생명’이 제일 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며칠 전, 신문에서 제페토 님의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우리는 미화되었다’ (제페토 지음, 수오서재)
안녕하세요? 이 책 추천이 참고가 되셨다니 기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집이 나왔다는 정보를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