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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요?
올해 8월, 한국은 ‘난민’과 관련된 이슈로 다시 한 번 들썩였다. 바이든 미대통령의 아프가니스탄 미군철수 이후 3개월 만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에게 항복한 것이다. 수도 카불의 점령과 함께 아프간을 탈출하는 수천 명의 시민들이 인접국가로 난민신청을 했고 우리나라도 이 과정에서 아프간 내에서 정부기관에 조력한 특별공로자 370명을 국내에 받아들였고 이들은 ‘인도적 특별체류자격’으로 입국했다. 그러나 국민들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다. SNS에서는 ‘인도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우리 국민도 못 챙기는데 무슨 난민이냐’부터 시작해 ‘특히 이슬람 사람들은 무섭다’ 등의 반대목소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실 최근 아프간 사태로 인한 난민 논란 이전에 난민 이슈로 더 크게 국내를 달궜던 것은 2018년 내전을 피해 제주도로 입도했을 때였다. 당시 이슬람계인 예멘인에 대한 극렬한 반대여론이 들끓기도 했는데 취업난 가중, 이슬람의 여성비하에 대한 두려움이 이유기도 했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단어가 있었다. 바로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이슬람 공포증)’였다.
# ‘나는 차별하지 않아’라는 당신에게 날리는 직격탄
강릉원주대학교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을 가르치는 저자 김지혜는 2019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펴냈다. ‘선량한’과 ‘차별주의자’라는 이율배반적 단어의 조합으로 이목을 끈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이 발표한 2020년 대출 1순위 책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혐오, 차별은 사회적 관심사가 됐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뉴스를 열면 혐오와 차별의 범죄부터 각종 온라인 사이트와 SNS에서 넘치는 각종 혐오와 차별들은 이 시대를 범람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뉴스나 댓글을 보며 혀를 끌끌 찬다. 이 시대를 범람하는 혐오와 차별 속에서도 우리는 종종 ‘나는 혐오,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어쩌면 안위하는 것이다(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저자는 우리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우리가 종종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 혹은 그렇게 믿는 – 일상 속 작은 차별을 말이다. 그 시작은 자기반성에서다.
토론회가 끝나고 식사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참석자 중 한분이 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결정장애라는 말을 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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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학과 법학을 전공하며 인권을 공부했고, 장애인의 권리와 법에 관한 수업을 들었다. 게다가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어 어떤 상황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가 차별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7p ‘프롤로그 당신은 차별이 보이나요?’ 중)
# 일상 속에 숨어있는 특권과 편견
일상 속 차별과 혐오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차별의 시작을 ‘특권’에서 찾는다. 특권이란 주어진 사회적 조건이 자신에게 유리해서 누리게 되는 온갖 혜택을 말한다(p28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중). 내게는 너무 당연해서 불편함이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장벽으로 다가올 때, 내가 가진 ‘그것’이 바로 특권이다. 그리고 그 특권을 누릴 수 없는 누군가가 동시에 있을 때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차별이다. 또 다른 차별과 혐오의 시작은 편견이다. 복잡한 대상을 단순화시켜 이해할 때 발생하는 고정관념은 쉽게 ‘편견’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편견들이 모여 어떻게 쉽게 혐오가 되는지도 종종 본다. 경상도 사람은 이렇다, 전라도 사람은 이렇다, 라는 지역민에 대한 편견을 넘어 혐오가 되고, 성별에 대한 극단적 편견은 ‘여혐’ ‘남혐’ 되곤 한다. 나아가 편견이 집단을 대상으로 사회구조에서 공고해지면 그것은 구조적 차별이 되어 마치 ‘새가 새장을 볼 수 없듯’ 우리 곁에서 차별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바로 이 모든 특권과 편견, 차별과 혐오가 우리도 모르는 새 일상 속에 스며들어있다는 점이다.
흑인 분장은 개그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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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분장이 언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웃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한가지 사실은 분명해진다. 유머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우리는 무엇을 유머로 받아들이는가? 우리는 어떤 내용을 보고 즐거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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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홉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누군가를 비하하는 유머가 재미있는 이유는 그 대상보다 자신이 우월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87p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이유’ 중)
# 기울어진 운동장
이 책을 읽다보면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도 얼마나 많은 차별과 불평등 속에서 살아가는데, 이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라는 생각이다. 이만큼 얻기 위해 노력했고 그 능력만큼 얻은 것이 ‘특권’이며 차별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 그 누가 특권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지만 저자는 이 또한 편향된 능력주의라고 일갈한다. 한마디로 이 사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능력주의가 진짜 능력주의가 되려면 공정한 기준, 동일한 조건이 부여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난민 수용 때문에 취업난이 가중된다는 역차별의 문제나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역차별 논란 역시 ‘공정한 능력주의가 실현되는 사회인가’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다시 생각해볼 만한 문제인 것이다. 차별과 혐오의 근원을 조장하는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을 지적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언급하는 능력주의의 한계와 불평등 문제와도 맥락이 닿는다.
# 기부보다 먼저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는 세상이 된다면?
자, 이쯤 되니 궁금할 것이다. 대체 차별과 나눔은 어떤 관계가 있냐고. 아름다운재단이 몇 년 째 주력하는 캠페인이 있다. 바로 보호 종료 청년들을 위한 <열여덟 어른 캠페인>이다. 만 18세, 이 청년들이 보육시설에서 퇴소하며 맞닥뜨린 세상이 가장 힘들었던 이유는 경제적 자립이기 때문이지만, 한편으로 ‘고아’라 불리는 각종 편견과 차별이었다. 이 거대한 차별의 시선은 ‘북극에 살던 북극곰이 어쩌다 사막에 살게 되는 일’이기도 했고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도 한다. 이 차별과 편견이 매년 사회에 발 딛는 2500여 명의 보호 종료 청년들이 걸어야 할 길이다.
사회에 차별과 편견에 놓인 이들은 보호 종료 청년들뿐이 아니다. 수많은 소수자들 – 외국인노동자, 성소수자, 비정규직, 한부모 여성 가장, 노인 등 – 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일상 속에 알고도, 모르고도 저지르는 차별과 혐오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이다. 아름다운재단은 매년 80여 억 원의 기부금을 나눔을 위해 지원한다. 모두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활동하는 공익단체들과 소외된 사각지대를 위해 사용되는 것이다. 만약 전 세계 모든 이들이 일상 속 차별과 편견, 혐오에 맞서 이 사회에 변화를 가져온다면, 아름다운재단의 나눔이 필요 없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하지 않을까. (『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저자 윌리엄 맥어스킬은 기부 대신 일상 속 차별을 해결하는 이 기회비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 차별금지법
지난 7월, 국회는 ‘차별 금지’와 관련한 이슈로 들썩였다.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평등법’을 둘러싼 청원 때문이었다. 국민 10만 명의 동의를 받은 2개의 청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올라왔는데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과 평등법에 대한 반대청원이었다. 그 중 특히 논란의 중심이 된 것은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인데 이 법안은 성별, 출신국가, 학력 등 23개의 금지 사유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합리적 이유 없이 고용이나 교육에서 불리한 처우를 하지 못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의 항목에 대한 종교계, 기업계, 학계 등 많은 곳에서 반발이 있는 것으로 안다. 굳이 여기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란을 쟁점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땅에 존재하는 차별과 혐오를 넘어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금 보다 더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점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실질적인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불평등한 조건과 다양성이 고려되는 ‘적극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적극적 조치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 불이익을 받는 집단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필요할 때가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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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의 제정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관한 상징이며 선언이다.
(205p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중)
김진아 | 아름다운재단 경영기획국장
‘혼자 꾸는 꿈은 꿈일 뿐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을 무척 좋아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일이 굉장히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의 한걸음, 벽돌 한 장의 정신을 잊지 않으며 나눔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감사하며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