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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도 실패하고 정부도 실패할 때, 참여의 시간
평소 같으면 삐거덕거리면서도 그럭저럭 돌아가던 시장이나 정부가 갑자기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다. 멀게는 일본이 조선을 침공했던 임진왜란 초반에 그랬고, 가깝게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그랬다. 그래서 조선이 멸망하고 대한민국이 멸망했나? 우리 모두가 그 답을 알고 있고, 그 답은 ‘아니다’이다. 민중이나 시민의 참여만으로 국난國亂을 극복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들의 참여 덕분에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시민이 항상 이렇게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는 사회적 분업 원리에 따라 시민은 각자의 생업이나 맡은 일을 수행한다. 그러면 시민은 언제 참여하는가? 시민의 정치 참여에 대해,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는 전문가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시민의 참여가 불가피해지는 위기 상황, 즉 정치의 시간이 온다고 한다.
위기 시에는 전문가들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부정과 불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나타날 때는 전문가들도 잘못 대응하기 쉽다. 그래서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언제나 우리같은 보통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41쪽)
시민이 직접 등판해야 할 때가 오면, 정치적 일처리에 능숙한 전문가가 아닌 시민이 그 복잡다단함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보다 앞서 시민 각자가 가진 나름의 생각이 혼자만의 생각이 아님을 자각할 수 있도록 다른 시민과 연결하고 공감하여 하나의 뜻으로 모으기는 더 쉽지 않다. 시민의 뜻을 하나의 큰 방향으로 모아 험난한 정치 환경을 헤쳐 나가려면 이를 조직할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는 그 전문가를 위해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시민의 뜻을 모으고 이슈를 정의하는 일부터 모금이나 회의, 언론 대응과 같은 아주 실무적인 일까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조직하는 전문가로서의 본분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바로 ‘시민을 주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시민을 주도하려하면 시민을 잃고, 시민을 잃으면 운동도 힘을 잃기 때문이다.
위기는 정치적인 위기 말고도 다양한 위기가 있고, 반드시 대규모의 위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크고 작은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조직하기 위해 애써 본 사람 혹은 단체가 많은 사회는 시장도 실패하고 정부도 실패하는 위기가 닥치더라도 반드시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