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글

이 책은 한국의 기부문화에 관한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같은 듯 다른 한국인의 이타성에 관한 색다른 시각을 제공한다. 이러한 이타성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지 궁금한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재난 상황에서 발휘되는 한국인의 이타성

재난 상황이 닥치면 높은 이타성을 발휘하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재난 상황에 닥친 한국인의 응집력과 이타성은 좀 유별나 보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단군 부동산 사기 사건이라 불리는 한반도의 위치는 주변의 중국이나 일본, 유목 제국들에 비해 기후가 척박하고 생산력이 떨어지는 곳이며, 이런 이유로 생산력이 한반도보다 훨씬 높은 주변 강대국의 침략에 시달렸다. 수십만, 혹은 수백만 규모의 외적이 한반도를 침략하였을 때, 한국의 대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았다. 이른바 청야 후 산성 집결 패턴이다.

  1. 산성으로 싣고 들어갈 식량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태운다. 우물에 독을 탄다. 이를 청야淸野 전술이라고 한다. 이때 각자의 재산을 공평하게 없앤다.
  2. 산성에 들어가서 적이 물러날 때까지 함께 견디며 싸운다. 평상시 한국인은 서로를 매우 싫어하지만 산성 안에서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운명 공동체가 된다. 비좁은 산성 안에서 모여 힘을 발휘하려면 각자가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3. 외적이 힘을 다하여 물러나면 적의 뒤를 쳐서 대량살상한다살수대첩, 귀주대첩, 노량대첩 등에서 그랬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외적이 월등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금새 회복하여 다시 쳐들어와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산성 방어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전쟁만이 숙명은 아니기에 한국인은 재난 상황에서도 산성 방어를 수행한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 활동, 구한말의 국채보상운동, IMF 사태 때의 금모으기 운동, 그리고 최근의 코로나 사태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이타성은 역사적으로 습득해 온 산성 방어의 습성의 발현으로 저자는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한국인은 평소에는 서로를 매우 싫어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때 한국인이 보여준 일사불란한 대응을 보고 서구인들은 한국인이 권위에 순종적이며 아직 개인주의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일반적인 서구인이 한국인처럼 평소 말 안 듣는 민족이 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며 너그러이 이해한다.

한국인은 숭고한 속물?

한편으로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을 이렇게 이해한다. 재난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아무런 대가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만, 평소에도 똑같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신의 선행을 숨기려고‘오다 주웠어’처럼 하는 한편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선행을 밝히면 그 의도를 의심한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인은 타의에 의해 강제로 고결해지는 사고를 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닌다. 그렇기에 유명인이 기부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면 관심이나 인정을 받으려는 속내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은 남의 선의나 열정을 폄훼하는 짓에도 여지없이 특별한 재능을 발휘한다. 선행으로 도움 받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 자신을 돋보이려는 목적만을 위한 기부라 할지언정 도움은 도움인데 뭐가 그리 불편하단 말인가? 한국인은 자신의 선행을 숨기는 경향이 있기에 선량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의심한다. 한국인은 매우 이타적이지만, 동시에 그 사실을 매일같이 부정하며 산다. (131쪽)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인은 매우 이타적인 반면, ‘선행은 몰래 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관념이 기부문화 확산에 저해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에서 실시하는 기빙코리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자들은 자신의 기부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일반적 기부 참여를 확산시킨다’, ‘중산층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인식 변화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기부가 사회 임팩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선행을 숨기려는 습성과 기부를 통한 강력한 사회 변화 열망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좀더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다.

이 ‘손가락 하트’와 같은 한국 특유의 기부문화가 밝혀지길(이미지 출처: flaticon.com)

앞서 말한 대로 이 책이 한국의 기부문화만을 다룬 책은 아니고, 서구의 잣대에 의존하지 않은 채 한국인을 이해하려는 저자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이 책 표지의 양파 이미지처럼 한국인의 진짜 모습에 다가가려면 껍질을 좀더 까봐야겠지만, 한국인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자 어느 날 불현 듯 세계 무대에 등장한 한국이 신기한 외국인에게도 도움이 될한국어를 안다면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