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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익은 때로는 불온해야 하는가

공익변호사로 활동하는 저자의 활동 기록과 생각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들머리에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공익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의 사익인데, 왜 이걸 공익이라고 부를까.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철학자 존 롤스의 견해를 빌려와 보자. 그에 따르면 사회의 최소 수혜자, 즉 사회적 약자에게 그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 이득을 보장하는 규칙을 도입할 때 사회적 후생이 극대화된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의 이득은 사익이지만, 이들의 최대 이익을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획득하기 위한 노력은 공익을 위한 활동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공익’도 결국 누군가의 ‘사익·이권’이다. (중략)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공익’이라고 부르는가? 문언 그대로 해석한다면 ‘모두의 이익’이란 뜻인데 과연 누구에게나 이익이 되는 보편타당한 ‘공익’이라는 게 존재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중략) ‘공익’이란 허위의 개념이다. 그러나 ‘공익’이라는 표상이 우리에게 주는 어떤 이미지, 즉 의미의 ‘이데이(idea)’는 분명히 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이렇게 정리해 봤다. 아마도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란, ‘사회적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라고. (4~5쪽)

여기에서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가 문제가 된다. 사회가 허용하는 범위란 무엇이며, 누가 정하는 것인가. 지금은 당연히 공익으로 인정되는 것들 중 다수가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노동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그렇다. 지금은 무려 헌법으로 보장되는 기본권 중 기본권이지만, 과거에는 이를 주장하거나 실행하면 처벌을 받았다. 공익의 범위는 계속 확대되었던 것이다. 불법적 사익으로 여겨졌던 불온한* 것들이 마땅한 공익으로 인정받는 과정에 공익의 지평을 넓히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
* 불온(不穩)하다: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다.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류의 투쟁은 이 ‘공익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계속되어 왔다. (중략) 해당 시대, 해당 공동체에서 ‘공익’으로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들이 가장 ‘이기적’인 목적으로 ‘과격한’ 방식을 사용하여 처절히 투쟁해 승리했을 때, 그때를 우리는 역사가 한 단계 발전한 시점이라고 배운다. (6쪽)

이미지 출처: flaticon.com

따라서 우리 사회가 공익으로 인정하는 것들을 열심히 추구하고 쟁취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공익의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을 아울러 추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공익은 때로는 불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