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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결을 출발점으로, 바둑계에 닥친 충격과 그 이후의 적응 과정을 생생하게 기록한 르포르타주이다.
‘바둑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인간만이 쌓아온 철학의 판, 기보(棋譜)와 기세(棋勢)로 이루어진 예술이다’라는 자부심이 AI에 의해 흔들릴 때, 어떤 ‘미래’가 다가왔는지를 보여준다.
바둑의 예술성과 철학은 AI로 대체할 수 없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패배 이후에는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바둑 기사들이 AI에게서 ‘새로운 수’를 배우면서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고, 과거 일부 사람만 접근할 수 있던 정보들이 AI를 통해 누구나 손쉽게 이용 가능해지면서 오히려 더 평평한 세계가 펼쳐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논의해 온 바둑의 ‘기세’와 ‘기풍’이 무엇인지, ‘좋은 바둑’이란 무엇인지, 바둑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의 ‘바둑’을 우리가 일하고 활동하는 ‘비영리조직’, ‘시민사회’, ‘공익활동’으로 바꿔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제는 AI를 사용하느냐 마느냐를 논의할 시기가 아니라, AI를 사용했을 때 우리의 세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그리고 그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를 고민해야 할 때이다. AI는 우리가 지켜야 할 철학과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지 묻는다. 그 질문을 통해 우리는 ‘본질’에 더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1) 인공지능 이후 기풍이 사라졌다. 매우 아쉬운 일이다’
2) 인공지능 이후 기풍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리 아쉬운 일이 아니다’이런 의견 차이는 ‘좋은 바둑이란 무엇인가, 바둑의 목표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근본적으로 견해가 다른 데에서 나온다. 좋은 바둑은 이기는 바둑이며, 바둑의 목표는 승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2)번 의견으로 대답한다. 1)번 의견을 지지하는 이들은 좋은 바둑과 이기는 바둑은 다르며 바둑의 목표는 단순히 승리하는 것 이상이라고 본다. (P.143)
이 질문을 비영리조직으로 바꿔 읽어보았다.- AI 도입 이후 ‘비영리조직의 고유한 정체성’이 사라졌다. 매우 아쉬운 일이다.
- AI 도입 이후 ‘비영리조직의 고유한 정체성’이 사려졌다. 그런데 그리 아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의견 차이는 ‘좋은 비영리 활동이란 무엇인가’, ‘비영리 조직의 목표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성과와 효율이 무엇보다 필요한 가치라고 보는 사람들은 2번 의견에 공감할 것이다. 이들은 AI를 통해 업무가 빠르고 정확해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1번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비영리 활동의 가치는 단순히 목표 달성이나 효율적인 운영 그 이상에 있다고 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느림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찰,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비영리의 본질이며, AI 도입으로 이러한 ‘정체성’이 사라진다면 근본을 잃는 것이라고 우려할 수도 있다.
결국 비영리 조직이 추구하는 ‘좋음’이 무엇인지, 즉 사회적 임팩트를 극대화하는 것이 전부인지, 아니면 가치와 철학을 지키는 방식까지 포함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AI의 등장은 비영리 섹터에 ‘무엇이 성공인가, 그리고 우리의 역할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우리로 하여금 그 답을 새롭게 만들어 가도록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