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1월에 <2025 나눔북스 독자 경험 설문 조사>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이 조사의 응답 중 특히 인상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선근 독자님은 「비영리를 위한 아웃컴」을 읽으셨는데요. 책을 읽으신 데 그치지 않고 수행하고 계신 업무에 적용한 경험을 상세히 적어주셨습니다. 이에 이선근 독자님께 보다 구체적인 사례 경험을 청해 받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직업능력개발훈련센터 직업전환과정에서의
발달장애인을 위한 아웃컴 방식의 업무 적용
「비영리를 위한 아웃컴 핸드북」(이하, 「아웃컴 핸드북」)을 읽고 현업에 적용하며 느낀 점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장애인 복지 분야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햇수로 7년째 이 길을 걷고 있는 32살 청년 사회복지사로서, 지금은 발달장애인훈련센터에서 근무 중이며, 발달장애인의 삶이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화두로 삼아왔습니다. 그 고민의 여정에서 만난 책이 바로 「아웃컴 핸드북」이었습니다.
특수학교급의 특수교육대상자 및 학령기 졸업 이후 사회로 나가기 전 단계에 있는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체험수업과 직업능력개발훈련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우리 기관에서는 실제 취업 현장에 바로 투입되기 전 단계에서, 모의 공간으로 구성된 직업체험관에서 바리스타, 마트 캐셔, 요양보조, 도시락 제조, 서비스 직무를 통해 직업 전환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직업체험관은 단순한 직무 실습 공간이 아니라, 직업을 가진 나를 미리 경험해보는 전환의 장입니다. 참여자는 그 공간에서 역할을 부여받고, 과제를 수행하며, 타인과 협업하고, 책임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 과정을 단순한 활동 제공이 아니라, 사회로의 이행을 준비하는 전환 훈련의 핵심 단계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전환 현장에서 마주한 성과관리의 한계
그러나 이 체험관 수업이 실제로 참여자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기는 늘 어려웠습니다. 참여 인원, 운영 횟수, 이수율과 같은 지표는 정리할 수 있었지만,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의 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일을 대하는 불안이 얼마나 완화되었는지,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숫자로 환산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발달장애인과 매일 마주하는 실무자의 입장에서는 늘 같은 질문이 남았습니다.
“이 체험과 훈련을 통해 이 사람의 삶에는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가?”
성과는 일련의 수치로 정리되지만, 참여자가 보이는 미묘한 태도의 변화나 불안 감소, 자율성의 확장은 지표 바깥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변화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성과관리는 점차 행정적 절차처럼 느껴졌고,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와 보고서에 남는 결과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아웃컴 핸드북」은 저에게 단순한 개념서가 아니라, 이 간극을 메우는 사고의 틀로 다가왔습니다.
아웃컴을 평가가 아닌 전환 설계의 기준으로 이해하다
「아웃컴 핸드북」이 강조하는 것은 아웃컴을 지표 설정 기술이 아니라, 이 사업을 통해 참여자의 삶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묻는 사고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관점은 사회복지에 묻혀가는 저 자신을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이전까지 직무체험 완성도, 활동의 충실성, 참여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중심으로 수업을 점검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웃컴 관점은 질문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체험이 잘 진행되었는가?”가 아니라, “이 체험을 통해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의 태도와 인식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라고.
이 질문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직업체험관 수업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업무를 정확히 수행하는가?’가 아니라, ‘역할을 맡았을 때 책임감을 유지하는가?’, ‘실수를 경험했을 때 회피하지 않고 다시 시도하는가?’, ‘협력 상황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는가?’와 같은 행동과 태도의 변화를 핵심 아웃컴으로 정의했습니다. 책을 읽은 직후, 이 아웃컴 정의를 바탕으로 기존의 프로그램 평가 체계를 실질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기존에는 수업 종료 후 만족도 설문과 이수 여부 확인이 평가의 전부였습니다. 이를 사전 관찰 기록지, 회기별 행동 변화 메모, 훈련 종료 후 피드백 수집, 그리고 내부 사례 검토 회의로 이어지는 평가 흐름으로 전면 개편하였습니다. 아웃컴은 저에게 평가의 도구라기보다, 전환 훈련을 설계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보다, 어떤 변화를 준비시킬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전환 훈련에 맞춘 아웃컴의 구체화와 실현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환 훈련의 성과는 단기간에 가시적인 취업 결과로만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사회로 나가기 전 필요한 준비 상태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이에 따라, 훈련 과정에서 나타나는 작은 행동 변화를 구조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과제 시작을 주저하던 참여자가 스스로 작업을 시도하는 빈도가 늘어나는 변화,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회피 대신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의 증가, 낯선 환경에서도 감정을 조절하며 활동을 유지하는 안정성, 직무 체험 상황에서 자신의 의사를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기록의 언어도 달라졌습니다. “오늘 수업에 잘 참여했다”는 서술이 “처음 10분간 착석을 거부하던 참여자가 동료의 작업 시작 장면을 보고 스스로 자리에 앉아 과제를 시작했다”는 구체적 기록으로 바뀌었습니다. 변화를 설명하는 언어가 정교해지면서, 훈련 설계의 의도 또한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그 결과, 직업체험관 수업은 체험 활동이 아니라 직업 역할을 내면화하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웃컴 관점은 이미 해오던 관찰과 개입을 보다 정교하게 연결하도록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었습니다.
성과관리의 목적을 증명에서 학습으로, 그리고 조직의 성과로
이러한 변화가 누적된 결과, 작년 (‘25년) 공단 내 기관 성과 평가에서 전체 발달장애인훈련센터 중 1위를 차지하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은 숫자를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무엇을 왜 했는가를 설명하는 언어가 달라진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아웃컴 중심의 평가 체계는 보고서의 설득력을 높였고, 그 설득력은 참여자의 변화를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변화가 생겨났습니다. 아웃컴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소통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시각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깊어졌습니다. 우리가 제공한 프로그램이 아닌 이 사람이 경험한 변화를 중심에 두는 관점은, 당사자주의의 실천과 다름없었습니다. 참여자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어떤 순간에 자신감을 갖는지, 무엇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하는지를 더 세밀하게 살피게 되었고, 그 관찰이 다시 훈련 설계에 반영되었습니다. 기관은 점차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변화에 함께 응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웃컴은 단지 성과를 측정하는 도구가 아니라, 기관과 당사자가 서로 소통하며 성장하는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을 넘어, 비영리 전 분야에 적용 가능한 아웃컴의 가치
「아웃컴 핸드북」을 읽고, 발달장애인 훈련 현장에 적용해본 경험을 통해 느낀 점은, 아웃컴은 특정 사업이나 특정 대상에 한정된 관리 기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발달장애인 전환 훈련의 맥락에서 출발했지만, 이 사고방식은 비영리 현장 전반에 걸쳐 충분히 작용 가능하고, 오히려 지금 이시대에 가장 필요한 현장적 관점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장애인 분야만 하더라도 영역은 매우 다양합니다. 직업재활, 자립생활, 평생교육, 지역사회 통합, 문화·여가 지원 등 각 영역마다 목표와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지원을 통해 당사자의 삶에 무엇이 실제로 달라졌는가?”
그동안 많은 현장에서 성과는 참여 인원, 프로그램 운영 횟수, 취업 건수, 서비스 제공 시간과 같은 산출 중심으로 관리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러한 지표는 공공성과 책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당사자의 삶의 질, 자율성의 확장, 사회적 역할의 형성, 자기결정권의 강화와 같은 본질적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웃컴은 바로 이 지점을 다룹니다.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당사자의 삶의 방향과 태도, 선택과 행동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가를 묻습니다. 이 질문은 단지 장애인분야에만 국한하지 않습니다. 아동·청소년, 노인, 여성, 이주민, 지역사회 등 비영리가 관계 맺는 모든 대상과 영역에서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마치며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아웃컴 방식이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의 언어가 되었고, 그 언어가 바뀌자 동료들과의 대화도, 보호자와의 소통도, 보고서의 결도 함께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기관 성과평가에서 전체 센터 중 1위라는 결과로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발달장애인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였습니다. 처음으로 스스로 과제를 시작하던 참여자의 그 순간, “아이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해준 적이 없었다”던 보호자의 말 한마디가 이 모든 실천의 이유였습니다. 아웃컴은 그런 순간들을 보이게 만드는 언어였고, 저는 그 언어 덕분에 지원의 의미를 다시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 변화는 결국 실무자의 질문 하나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제공했는가?”가 아니라,“이 사람의 삶에서 무엇이 달라졌는가?”로.
이 경험이 하나의 물줄기가 되어, 장애인 현장을 넘어 비영리 전체로 조금씩 뻗어나가는 데 작으나마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이선근 주임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부산지역본부 부산발달장애인훈련센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