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 3년을 맞았다. 모금액은 2023년 651억 원에서 2025년 1,515억 원으로, 3년 만에 두 배 넘게 성장했다. 민간플랫폼 개방, 기부한도 상향, 지정기부제 도입 등 굵직한 제도 개선도 이어졌다.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법인기부 허용, 주소지 제한 폐지까지 예고하고 있다.

숫자만 보면 순항이다. 그런데 이 제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확대하기 전에 먼저 짚어봐야 할 것들이 보인다.

관(官)이 모금한다는 것

한국 기부법 체계에는 70년 넘게 유지된 원칙이 하나 있다. “국가·지자체 및 그 소속 기관·공무원은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다”(기부금품법 제5조). 한국전쟁 직후 관의 불합리한 모금 강요를 근절하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규정으로, 세금은 국가의 재정 수단이고 기부금은 민간의 자발적 재정 수단이라는 구분이 한국 기부법의 근간이다.

그런데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다고 규정한 ‘ 지자체’가 직접 모금 주체가 되는 유일한 기부 제도다.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이 기부금품법 적용을 명시적으로 배제한 것도(제3조), 이 원칙을 벗어나려면 별도 입법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기부금품법 원칙을 이미 한 차례 예외로 둔 상황에서 법인까지 포함하면 지자체-기업 간 정경유착 우려는 커진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특정 지자체에 대규모 기부를 집중하고, 그 대가로 해당 지자체의 사업 수주나 인허가 편의, 간접적 판로 개척 등을 도모하는 청탁·로비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일본도 기업기부는 고향납세와 완전히 별개의 제도(‘지역창생응원세제’)로 운영하며, 소관 부처도 다르다(총무성 vs 내각부). 기존 민간 비영리 기부 시장에 대한 구축(crowding-out) 효과 역시 아직 검토가 부족하다.

 

같은 이름, 다른 작동 방식 — 한일 비교로 주소지 제한 톺아보기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 고향납세제도를 참고했지만, 작동 방식은 꽤 다르다. 핵심 차이는 주민세 구조다. 일본의 주민세는 소득세의 약 88% 규모가의 독립세여서, 먄약 도쿄 거주자가 유후인에 고향납세를 하면 도쿄의 주민세가 직접 줄고 유후인으로 이동한다. ‘부자 동네 세금이 가난한 동네로’ 움직이는 수평적 이전이다. 반면 한국의 지방소득세는 소득세의 21%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 거주자가 춘천에 기부하면 세액공제 대부분이 국세(소득세) 감소로 귀결되고, 서울의 세수 손실은 미미하다.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닌 중앙정부가 재정을 부담하는 수직적 구조인 셈이다. 

이 차이가 ‘주소지 제한 폐지’ 논의와 직결된다. 일본에서는 거주지 기부에 자연스러운 유인이 작동하지만, 한국에서는 법적 제한이 유일한 안전판이라는 이야기다. 주소지 제한은 수도권 재원을 지방으로 이전하려는 제도 목적의 핵심 장치다. 폐지하면  인구의 1/4을 차지하는 수도권 주민이 거주지에 기부하고 세액공제·답례품을 모두 받는 상황이 된다. 중앙정부 세수만 줄고, 지방 이전 효과는 사라진다. 제도의 존재 이유가 흔들리는 셈이다.

 

모금에서 사업으로, 그리고 민간의 역할

이 제도가 다음 단계로 가려면, ‘얼마나 모았는가’에서 ‘어떻게 썼는가’로 관심이 옮겨가야 한다. 현재까지의 연구는 모금액 중심이고, 기금 사용 실태와 효과에 대한 검증은 거의 없다. 지자체 담당자 1~3명이 기부자 관리부터 답례품 배송, 기금사업 기획까지 도맡는 현실에서 양질의 사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기존 세출사업과 중복 사용이 금지되어 반드시 신규 사업을 기획해야 하는 제약도 있다. 구조적으로 민간 조직과의 협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일본 사가현에서는 CSO 지정기부 모델을 통해 참여 비영리단체가 9개(2015년)에서 106개(2021년)로, 기부액은 1.5억 엔에서 9.1억 엔으로 성장했다. 지역문제 발굴, 사업기획, 기부자 관계 구축처럼 민간이 잘하는 영역에서의 협력이 제도의 질적 성장을 이끌 수 있다. 고향사랑기부제의 잠재력은 연간 1,500억 원이라는 숫자보다 시민이 특정 지역의 특정 문제에 자발적으로 재원을 배분하는 경험 자체에 있다. 그 경험이 답례품 쇼핑으로 소비되지 않으려면  기부금 확대의 속도보다 사용 방향에 대한 논의가 먼저여야 한다.


이 글은 2026년 3월 17일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비영리 섹터 환경 변화와 제도 동향 세미나’ 발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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