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문화총서 11권 ‘이타주의자의 시대’에 많이 인용되었던 R.L.Payton과 M.P. Moody의 “Understanding Philanthropy: Its Meaning & Mission”이 지난 8월 한국어 제목”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로 번역되어 아르케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총서 11권인 ‘이타주의자의 시대’의 선배(?)격인 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저자인 테오 슈이츠가 앞머리에 ‘이 책을 필란트로피학의 창시자인 밥 페이턴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고 헌정의 글을 썼습니다.

슈이츠는 페이턴의 필란트로피의 정의를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책의 전반에 ‘페이턴과 무디에 따르면’으로 인용한 부분이 많습니다. ‘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는 그 인용의 출처가 되는 책입니다. 슈이츠는 유럽의 역사와 함께 ‘복지국가에서 필란트로피’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와 사회제도로의 역할을 잘 정리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는다면 페이턴의 책은 기본 개념과 문제의식이 충실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이 분야의 고전으로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모금과 기부에 관련된 비영리 기관, 관련 학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이 최소한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 책 표지 이미지(출처:아르케 홈페이지)

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 책 표지 (출처:아르케 홈페이지)

이 책의 번역과 감수는 번역서를 출간하는 담당자 입장에서 매우 감탄할만한 수준입니다. 기부문화총서 1-4권을 출간한 아르케의 이형진 박사님께서 이 분야의 전문가답게 오역을 피하면서도 읽기 쉬운 번역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해내신 것으로 보입니다. 비교적 낯선 분야인 필란트로피에 대해 어학 실력이 훌륭한 번역가라도 서너군데는 심각한 오역을 하는 현실에서 매우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나 반갑습니다.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필란트로피의 기본 개념과 관련 범주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필란트로피 관련 지식이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면 ‘왜 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기술이 아닌 철학의 기반을 다질 수 있습니다. 둘째,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많은 고민과 이슈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문재인 정권 100대 과제에 포함된 ‘시민사회발전 기본법’, ‘고향세법’ 등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사체가 갖는 중요성을 중심으로 보아야 하고, 자유로운 결사체야말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필란트로피의 성과요구나 단체 대표의 연봉 등 미국에서 자주 문제시되는 이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한 관점도 얻을 수 있습니다.

책 속 밑줄 친 부분

  • 필란트로피는 ‘공익을 위한 자발적 행동’이다. 이 행동의 목적은 두 가지 형태로 압축된다. 첫째, 어떤 공식적 또는 법적 책임도 없는 사람을 위해 고통을 완화해 주는 것이고, 둘째, 지역사회 내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어떤 식으로든 개선시키는 것이다. (58p)
  • 필란트로피의 역사는 ‘도덕적 상상력의 사회사'(social history of the moral imagination)다. 필란트로피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이 좋은 것인가라는 도덕적 비전을 실현하게 하는 가장 우선적인 방식이다. (69p)
  • 1973년, 필란트로피를 비롯한 미국 사회에서 민간부문이 차지하는 역할을 연구 조사하고, 자발적 기부의 증진 방법을 모색할 목적으로 파일러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순수 민간기구로 록펠러 3세를 비롯하여 종교계, 노동계, 관계, 재계, 문화계 인사들이 참여함으로써 다양한 시민사회의 경험과 의견을 구하고자 했다. (82p 각주)… 그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적 필란트로피와 공적 수요에 관한 위원회’이다.
  • 통상 채러티(charity)라고 불리는 전통의 흐름 속에서 고통과 곤경 그리고 긴급한 필요에 대응해 간다. 필란트로피라 불리는 이러한 전통의 흐름 속에서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진전시킬 방도를 생각하고 이에 대응해 간다. 두 가지 흐름은 질서라는 정치적 힘과 시장이라는 경제적 힘과 함께 섞이고 조화를 이루게 되면서 인간애라는 강물의 자연스런 흐름에 적응해 가는 것이다. (105p)
  •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이를 ‘순차적 호혜성’이라 칭하기도 했는데 누군가로부터 받은 도움과 선행을 자신을 도와준 그 누군가보다는 제3자에게 되갚게 되는 것을 뜻한다. 도움이 필요한 위급상황은 아마도 시간적, 장소적으로 외딴 곳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있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 옆을 지나가는 낯선 자가 “누구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의 교훈을 믿고 있는 사람이기를 기대할 것이다. (164p)
  • 필란트로피의 가장 근본적 원칙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응용하자면, “좋은 일을 하되 해를 끼치지 않도록”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은 우선 그 의도를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하며, 해를 끼치지 않고 좋은 일을 하는 것은 그 의도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이 원칙에는 결과에 대한 경고 또한 포함된다.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 암묵적으로 깔려있다. (175p)

 

현재 기부문화총서 12권으로 출간하게 될 책 ‘기빙웰-잘 주고 잘 받는 나눔의 윤리’는 이런 기본 개념들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여러 전공의 학자들이 전세계적인 필란트로피에 관한 제도적, 윤리적 이슈를 넓고 깊게 다룬 통섭적인 책입니다. 향후 ‘이타주의자의 시대’와 ‘필란트로피란 무엇인가’에 이어서 이 세 권의 책이 필란트로피의 개념과 철학, 윤리에 대한 이해에 대해 고전이자 필독서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타주의자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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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빙웰(2017년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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