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울신학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이자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신 조의행 교수님께서 기고해주셨습니다.

 

COVID-19시대, 영국 정부의 비영리섹터 재정지원

공중방역의 선진국 영국이 이번에는 방심했습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이웃해 있는 프랑스에서는 COVID-19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을 펼쳤습니다. 영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3월 12일, 영국 정부는 어차피 확산을 막을 수 없는 바이러스라면 거리 두기보다는 정상적인 생활을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 천천히 면역력을 키우는 쪽으로 결정했습니다. 기침이나 발열이 있더라도 고작 7일간의 자가격리를 권고했습니다. 바로 ‘집단 면역’입니다. 하지만 이 정책은 며칠도 못가 뒤집혔습니다. 같은 달 16일과 18일, 각각 강제 검진과 봉쇄, 그리고 영국 전역에 휴교령을 선포하며 강경책으로 선회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늦었습니다. 본격적인 검진이 시작되자 확진자 수는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4월에는 하루 확진자 수가 8천 명이 넘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달에만 평균 확진자 수가 약 5천 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일은 보리스 영국 총리마저 COVID-19 양성 반응을 보였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증상이 가볍지 않았습니다. 국정 공백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하면 사망할 뻔했습니다.

2020년 6월 26일 기준, 현재 영국에서는 약 30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약 4만 3천 명이 이 질병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확진자 기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피해를 보고 있는 국가입니다. 사실 영국 정부의 대응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많은 과학자는 1주일만 더 봉쇄조치가 빨랐더라도 사망자가 1만 명이 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가로는 혹독합니다. 하지만 6월 들어 일별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천명 이하로 떨어지자 영국 정부는 지난 3월 16일부터 매일 실시하던 브리핑을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7월 초부터는 음식점과 호텔 등의 영업도 재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가라앉은 경제회복 역시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발표가 있기 전부터 봉쇄와 더위에 지쳤던 영국인들은 이미 바닷가로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한국과 비교해 엄청나게 많은 확진자가 이어지는 상황이 무색합니다. 우리의 눈에 꽤 무책임해 보이는 영국인입니다. 하지만 COVID-19시대 영국의 모습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봉쇄령이 내려진 직후부터 평년의 몇십 배에 달하는 영국인 자원봉사 신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넘쳐나는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이들과 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단체를 연결해주는 회사까지 나타났습니다. 더군다나 그동안 비영리단체에 지원했던 영국인 3분의 1은 봉쇄령 와중에도 기부액을 늘리거나 더 많은 물품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고용안정이나 경제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기부한 사람은 오히려 늘었습니다. 이 와중에도 빛나는 영국인의 연대의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염병의 창궐이 영국인들의 지역사회와 개인의 고통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될 만합니다.

그러나 COVID-19가 비영리섹터와 기부문화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비영리섹터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기부액 감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체 기부액 자체에 큰 변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비영리섹터로 향하던 기부금이 병원과 국가의료 시스템인 NHS(the National Health Service)로 향했습니다. 아동과 동물복지 관련 단체에 대한 기부는 대폭 감소했습니다. 아무래도 영국인들은 COVID-19의 최전선에서 분투하는 의료진에게 기부의 손길을 먼저 내밀었습니다. 비영리섹터에 대한 정기 신규후원자 비율이 예년과 비교해 50% 이상 줄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모금 수입이 감소하면서 비영리단체의 적립금이 급격하게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을 버틸 수 있을 비영리조직은 4분의 1에 불과합니다. 재정적으로 튼튼한 상위 155개 비영리조직도 적립금은 연간 수입의 10% 이하였습니다. 자원봉사자는 늘고 있다고 해도, 이들을 조직하고 이끌어 줄 비영리섹터의 존립 자체가 COVID-19에 의해 위협받고 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 비영리단체 중 하나인 Oxfam의 경우, 연간 수입은 약 4억 3천 4백만 파운드(한화 약 6천 4백 3십억 원)이지만, 적립금은 그 2천 5백만 파운드(약 3백 7십억 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이후 옥스팜은 600개의 영업점을 폐쇄했고, 많은 직원이 휴직하거나 그만두었습니다. 대규모 행사나 거리에서 모금해 오던 비영리섹터의 앞날이 COVID-19 시대에 벼랑 끝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수많은 영국 비영리섹터 단체들이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곧 파산할 위기에 직면한 것입니다.

비영리섹터의 위기에 직면해 영국 정부의 재정지원도 주목할 만합니다. 라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지난 4월 8일,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위기에 빠진 이들 단체에 대한 보조금으로 총 7억 5천만 파운드(약 1조 1천 3백억 원) 규모의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중 3억 6천만 파운드(약 5천 4백억 원)는 각 정부 부처에서 해당 단체로 지원되는데, 2억 파운드는 직접 호스피스로 직접 전달됩니다. 그리고 인구가 가장 많은 잉글랜드의 경우에는 취약계층을 담당하는 소규모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기업 등을 위해 3억 1천만 파운드(약 4천 6백억 원)가 국민복권공동체기금(the National Lottery Community Fund)을 통해 지원됩니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및 북아일랜드의 취약계층 담당 소규모 조직이나 사회적 기업을 위해서도 총 6천만 파운드(약 8백 90억 원)가 할당되었습니다. 영국 정부의 지원 방침은 간단합니다. 가장 지원이 절실한 단체나 조직에 우선권을 주는 것입니다. 물론 수혜단체는 긴급 지원금의 필요성과 관련 증거 등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원절차 또한 간단합니다. 이미 일부 비영리섹터 단체들은 그동안 긴밀하게 정부의 관련 부처, 국민복권공동체지금 및 지방정부 등과 협력해 왔기 때문에 기존 제도적 틀을 통해 신속하게 보조금 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으며 그 검증 역시 복잡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영국 정부의 재정지원이 존립위기에 놓인 비영리섹터의 숨통을 다소 트이도록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한계 역시 적지 않다는 데에 영국 정부와 비영리섹터의 고민이 있습니다. 관련 주무 부처인 영국 디지털·문화·미디어·스포츠부는 5월 6일 보고서(The Covid-19 crisis and charities)를 발행했습니다. 여기에는 특히 긴급 지원 이후 드러난 문제점이 포함되어 있는데, 몇 가지를 꼽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재무성이 발표한 7억 5천만 파운드로서는 여전히 비영리섹터의 재정 악화를 타개하는데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정부의 신속한 지원 발표에도 불구하고 실제 재원 지급은 빠르지 않았습니다. 셋째, 재원의 분배방식에서 투명성이 부족했고, 각 단체에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재원으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재무성 발표 이후 2주 동안 재정지원 관련 적격기준이나 세부사항 등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지도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단기적 처방 외에 비영리단체 등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방안 또한 안정적인 기금 마련의 필요성이었습니다.

영국 정부의 보고서에 대해 비영리섹터 또한 동감합니다. 특히 COVID-19 창궐과 같은 재난이 발생하면 비영리섹터의 역할과 필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런 시기일수록 비영리섹터 일부 단체들의 재정 상황은 더욱 열악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따라서 비영리섹터 담당자들은 영국 정부의 더 큰 관심과 지원을 호소합니다. 아울러 이들은 영국 정부가 내린 처방이 소규모 단체에 집중된 것에는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앞서 옥스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중대형 비영리조직의 재정적 상황 역시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번 영국 정부의 재정지원 정책은 환영할 만하지만 동시에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 보고서가 남긴 시사점은 적지 않습니다. 향후 COVID-19시대 영국 비영리조직의 안정적인 재원 운용과 향후 공공기능 대한 방향성을 지속해서 논의할 수 공간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방역에 성공적인 대한민국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 사회는 급격히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오프라인 모금에 의존해 온 비영리조직은 재정적인 위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국의 사례는 비록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COVID-19 시대 정부에게 비영리섹터가 갖는 공공성과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