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8년 1월에 전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에서 발행한 정기간행물 ‘동행’ 6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보러가기]
1. 기부자 마음의 상처
2017년은 유독 기부에 대한 부정적인 사건이 많았습니다. 2016년 연말에 K재단과 미르재단이라는 폭탄이 터지더니 2017년 하반기에는 기부금의 부정모집과 사용으로 모두를 충격에 빠트린 ‘새희망씨앗재단 사건’과 ‘이영학(어금니아빠)사건’이 있었습니다. 모금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여간 난처한 것이 아닙니다. 전혀 상관없는 조직의 일부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기부를 해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부현황조사인 ‘기빙코리아 2016’에서 기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18.2%의 응답자가 ‘기부단체를 신뢰할 수 없어서’라고 응답했습니다. 다음 번 조사에서는 이 비율이 더 높아질까 두렵습니다.
다른 한 편 걱정되는 것은 기부자들입니다. ‘새희망씨앗재단’에는 4년간 약 5만명의 기부자들이 128억이라는 돈을 기부했는데, 대부분이 유용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도 신용카드 할부로 돈을 계속 내야하는 기막힌 경우도 있었다 하니, 선한 마음을 이용당한 마음의 상처에 미안하고, 가슴 아픕니다. 개인적으로 12억원을 모금한 ‘이영학(어금니아빠)’은 기부금을 유용한 정도가 아니라 엄청난 범죄의 피의자입니다. 이제 ‘기부’라고 하면 덜컥 ‘속는 것 아닌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부터 떠오를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는 128억원, 12억원의 돈에 비할 수 없는 재난이자 비극입니다.
2. 왜 이런 일들이?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법제도의 미진함을 지목합니다. JTBC 스포트라이트 프로그램에서는 ‘새희망씨앗재단’이 가능했던 이유로 비영리법인(단체)의 등록부서, 지정기부금단체를 지정하는 기획재정부, 그리고 실제 기부금 세제혜택을 제공하는 국세청 중 어느 부처도 실제로 법인의 활동을 감독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목하였습니다. ‘이영학(어금니아빠)’에 대한 보도에서도 수년간 기부금품법에 등록하지 않았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12년간 한 번도 등록한 적이 없다면, 등록하지 않은 사람보다 적발하지 않은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이런 사건이 붉어지고 나면, 국회가 바빠집니다.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를 개선한다고 합니다. 등록기준을 높이고 처벌을 강화합니다. 기존 천만원 이상 모금 시 등록하게 했던 기부금품법을 강화해서 금액기준을 더 낮춰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렇게 법제도를 강화하면 위와 같은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까요?
아름다운재단 등 많은 기관들이 등록기관 보고, 기재부 보고, 외부감사 후 국세청 보고, 그에 더해 기부금품법 등록과 보고를 위해 굉장히 많은 행정인력과 비용을 사용합니다. 문제는 법이 약해서가 아니라 법을 지키지 않는 단체와 개인을 적발하는 감찰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부금 모집의 등록과 사용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조직도에서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인력은 단 2명입니다. 국세청에서 비영리기관의 감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공익법인들에게 공시의무를 부과하지만 정작 공시가 제대로 되었는지 검수하는 인력은 배치하지 않습니다. 법제도가 느슨하거나 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라 법제도가 지켜지기 위해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새희망씨앗재단’ 의 사례가 우려되는 이유는 현재 모금의 약점을 파악하여 악용했기 때문입니다. ‘이영학사건’은 기존 텔레비전 방송에서의 사연소개를 통한 모금에서의 문제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수혜자가 직접 기부자에게 모금을 요청하고 기부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 큰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 기빙코리아 2016에 따르면 기부자들이 기부처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투명성과 신뢰성(51%)”을 가장 높게 응답했습니다. 기부자가 생각하는 기관의 투명성은 수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는 결연사업에 대한 높은 선호를 설명해줌과 동시에 소셜미디어를 통한 수혜자 직접 기부와 그에 따른 위험성도 높아진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3.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름다운재단 기빙코리아에 따르면 한국의 기부참여율은 2011년 57.5%에서 2013년 48.5%, 그리고 2015년 45.6%로 낮아졌습니다. 경기둔화가 이어지는 중, 올해의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기부참여는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몇몇 대형 기관에서 부정적 사건의 여파로 기부 해지가 있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인지도가 낮은 중소형 기관들은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기존의 기부금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모금활동을 준비하거나 어떤 기관은 기부금이 줄어든 가운데 사업 운영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비영리 종사자들은 이 사건을 원망스럽게 봅니다. 지난 수십년간 좋은 의도로 건강하게 일하고 있는 99%의 노력이 폄하되고 있습니다. 지난 십여년간 법제도는 더 많은 투명성과 보고의무를 높여오고 있었고, 이로 인해 기관들의 운영도 선진적으로 합리화되어왔는데, 이번 사건은 너무 극단적이어서 억울한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다른 한축으로 보면, 국내 공부방 아이들에게 교육기회를 주겠다고 걸려온 전화 한통에 기부를 결정한 사람들이 5만명이 있었고, 현재에도 거리모금을 통해 기부에 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관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와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국세청에 보고되는 전체 기부금이 2000년에 4조 3천억원 규모에서 2014년 12조 규모로의 성장했습니다. 그간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만, 기부금 규모가 3배 규모의 양적 성장을 이루는 동안 더 많은 모금에 전념하느라 놓쳐왔던 질적 성장이나 고질적인 위험요소들이 물 위로 떠오른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묵혀온 문제를 꺼내놓고 아플지언정 치료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입니다.
4. 우리가 놓친 것들, 혹은 외면했거나?
첫 번째로는 앞에서도 언급되었던 법제도 운영의 문제입니다. 현재 비영리의 등록과 관리, 기부금 세제혜택과 모집행위에 대한 관리는 여러 부처에 각기 다른 기준으로 이루어집니다. 각 부처와 지자체에서 전담자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비영리법인의 전체 수와 구성, 예결산 규모에 대한 일관된 자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법을 지키려는 기관은 삼중, 사중의 중복적인 보고의무에 시달리는 반면, 보고를 받는 부처들 중 누구도 실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새희망씨앗재단’과 같은 기관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사고가 나면 이것을 비영리기관의 문제로 탓하고 법적 의무조항을 늘리는 것으로 자신의 할일을 다했다고 시전하는 국회와 정부의 태도를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선한 단체는 늘어가는 준법의무에 허리가 휘고, 그 틈새를 악용하는 악인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준법을 위한 현실적인 지침과 소규모 기관을 위한 현실적 적용방법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늘려야 합니다. 실제 인터넷 ‘새희망씨앗재단’을 검색해보면 기관이 의심스럽다는 글들이 수년 전부터 올라와 있습니다. 이런 제보를 받고 검수하는 기능을 국가차원에서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비영리기관들이 모금의 윤리나 법제도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기부자 그룹 인터뷰를 진행해보면, 기부자라 할지라도 기부단체의 정보를 살펴볼 시간이나 정신적인 여유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제도 준수를 기본으로 하더라도 그 위에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것, 그리고 각 기관의 가치에 따라 강조해야 할 윤리적 행위를 공포하고 그 준수여부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서구에는 비영리기관들의 협회나 모금기관들을 위한 엄브렐러 조직(umbrella organization; 상부 기구)들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엄브렐러 조직들이 법 이상의 윤리적 기준을 표준화하고 그 실행여부를 인증하여 기부자에게 더 높은 신뢰를 줄 수 있습니다. 사실, 이번처럼 부정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 개별 기관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발언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엄브렐러 조직이 활성화된 나라에서는 개별 기관이 아닌 협회나 네트워크 조직이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오해지점을 해명하고 전반적인 개선안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모금을 할 때 기부자와 어떻게 소통해 왔는가의 문제입니다. 기부는 동서양 모든 나라에서 ‘감정적인 반응’으로 시작합니다. 기부자와 수혜자는 사회적인 위치와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저부터도 기부자가 갖는 순진한 희망들이 현실과 맞지 않는 지점에서 침묵하거나 어물거리며 넘어간 적이 많습니다. 기부자들은 자신의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싶어하고, 그 결과를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수혜자의 인권이나 사업의 복잡성 등으로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기관을 통했을 때 드는 운영비를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기부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분명히 모금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동안 그 틈을 타서 수혜자를 직접 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으며 운영비는 전혀 들지 않는다는 기부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기술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수혜자를 직접 보아야 한다는 것. 운영비가 전혀 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많은 경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좋은 기부는 도움을 주되 그 과정에서 도움 받는 사람과 관련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비영리 모금기관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5.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
그렇습니다. 지금도 과중한 업무와 부족한 자원에 고생하는 비영리 기관들에게 공론의 장에 참여하고 엄브렐러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회비도 내라고 하는 것, 기부자가 듣기 싫어할 말을 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습니다. 이는 기관에 운영부담을 높이고 기부금에 손해를 입히는 일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흐름이 지속된다면 개별 기관들이 개별적으로 그 영향을 피해가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함께 고민하여 장기적인 해결점을 찾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부와 모금, 비영리의 활동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더 그러합니다.
그렇게 많은 비영리들이 정부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느라 고생하고 있다면, 왜 세금을 더 많이 걷어서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공동체로서 선의에 기반하여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를 경험하는 것’ 자체입니다. 대부분의 기부자들이 ‘기부를 하면서 본인이 더 많은 것을 얻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사치례가 아닙니다. 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을 학계에서는 Warm Glow나 Giver’s High라고 명명하였고, 이는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네트워크와 신뢰가 좋은 사회는 고립과 불신에 의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피할 수 있습니다.
민간의 기부문화란 단지 정부의 세금이 부족한 것을 개인들에게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부하는 사람과 도움은 받는 사람, 혹은 공익 아젠다를 만들어 실행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관계의 경험이자 사회에 공헌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자아실현의 장입니다. 이것은 그 자체로 기부금 이상의 가치를 가지며, 기부금으로 행한 공익사업과는 별개로 사회에 이바지합니다.
비영리모금기관이 하는 두 가지의 귀한 사회적 기여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상처받은 기부자를 위로하고 대안을 찾는 지난한 과정들이 단지 힘들지 만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모금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한층 더 높아져도 좋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