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기부자가 궁금하다?
최근 ‘조세특례제한법’ 132조 개정으로 연말정산 소득공제에서 지정기부금을 포함한 8개 항목에 대해 총액 2500만원까지 제한을 두게 된 것에 대해 많은 단체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이는 소수 고소득자, 고액기부자에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부자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답변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고액기부자는 세제혜택을 덜 받아도 상관 없다고 넘어가야 할까요?
모금과 관련된 교육을 받다보면, 상위 20%의 기부자가 전체 80%의 기부금을 담당한다는 식의 ‘기부피라미드’를 먼저 배우게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기부자의 수는 보통 소득자가 훨씬 많지만 기부금액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고액기부자의 기여가 훨씬 크다는 것이지요. 한국은 고액기부활성화가 시작되는 시기라고들 합니다. 그 동안 부를 축적한 사람의 수도 적었고, 있다 하더라도 기부에 대한 인식도 낮았는데 이제 이 두가지가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9년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에서 ‘부유층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 때에도 기부자로서 부유층 연구가 거의 처음이었는데, 그 이후로도 연구가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미국과 영국과 같이 좀 더 활발한 서베이와 연구조사가 진행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10억이상 자산가 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50억 이상 자산가 7명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한국 부유층의 기부와 관련된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되었습니다.
기부의 동기
1. 개인적 만족과 성취
기부를 통해 잘 살아온 자신과 조직에 감사를 표현하고, 새로운 일에 참여하여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자 함
2.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음
자신을 드러내고 사회적인 지위와 존경을 좀 더 얻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되고, 이름을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나타남
3. 노블리스 오블리주 그 이상임
부유층 기부에서 중요한 동기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사회적 책임을 근간으로 두고 있음. 그러나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자신의 뜻(가치)이 사회에 전승될 수 있고, 자식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부방법을 모색함
4. 스스로 ‘사회변화’를 만들고 싶어함
‘그래 뭐 나라가 세금을 거둬서 하는 거 보다 개인들이 기부를 활성화시켜서 NPO들이 그걸 해서 사회적인 그런 구제행위를 좀 해준다면 사회가 더 잘 되겠네’이런 논리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걸 ‘내가 기부를 그런 쪽으로 했으면 의미가 있겠어’하고 내가 그걸 생각한 거예요.
기부장애요소
1. 모범적 사례가 없음
부유층들이 기부모델로 삼을 수 있는 기업가나 사회지도층의 기부 행동이 없음. 우리나라 대표적인 부자들도 개인기부보다 기업기부를 중심으로 하고, 대통령도 재단을 별도로 만드는 등 모범적이라 볼 수 없음.
2. 불안한 노후
부유층의 기부행동의 장애요인으로 우리나라의 후진적 노인복지제도를 언급함. 특히 노년기 부유층의 경우는 노후자금을 확보한 후에 기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노후의 불안함은 기부결정을 유보하거나 기부금액을 낮추는 기제로 작용함을 보여줌
3. 믿고 접촉할 창구가 없음
부유층이 기부결정을 한 후 구체적인 게획을 세우고자 할 때 사회적 가치와 기부가 필요한 문제들을 전문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접촉할 수 있는 재단이나 기관들이 없다고 느낌
또한 비영리조직과 기관들이 기부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으로 보임
4. 전문가의 부족
기부자들에 대한 존중과 예우에 관해서 재단이나 기관의 전문가들이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 잘 모르고 기관의 입장에서 기부자들을 대하는 우월감을 보이기도 하며, 길제로 기부자들에게 형식적인 감사표시만 하고 그들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못하고 있음.
5. 부정적인 사회정서
부유층의 기부에서 가장 예민하게 신경쓰는 부분은 사회의 정서로 나타남. 국민들이 부유층을 도둑놈 취급하며 비난하거나 기부를 당연시여기고 부정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함
혹은 사회의 부유층이면 ‘산신령’처럼 흠이 없어야 한다는 높은 잣대를 기준으로 삼아 비판하는 것도 기부행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는데 방해요인이라 인식함
또한 정부에서도 부유층의 기부가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으며 이미 부유층의 기부에 많은 것을 ‘봐주고’있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음. 이는 부유층의 적극적인 기부행동에 장애요소가 되고 있음
6. 부당한 세금제도
부유층들은 실제 기부에서 순수한 의도로 기부를 실천하려하며 세금문제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도 보임
그러나 재단 설립 등의 과정에서 세금의 문제 때문에 기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함.
또한 현물(부동산, 주식 등) 기부를 하고자 할때 세제의 문제로 인해 기부가 이뤄지지 않거나 제한됨
……………………….
만약 입법 관련자들이 이러한 부유층의 정서를 알고 있었다면, 이번과 같이 조세특례제한법을 바꿀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혹은 국회의원 스스로가 기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면, 이런 법을 그냥 통과시키지 않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한편으로 기부자들의 신뢰를 높이고 참여를 넓히기 위해서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저 스스로부터 전문성을 강화해가야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