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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 2004년, 나는 두 번째 들어간 대학을 막 졸업한 터였다. 나의 두 번째 대학 생활은 첫 번째와는 사뭇 다른 문화적 충격이었다. 우선 총학생회가 유명무실해져 있었다. 학생들은 스펙 쌓기에 바빴고, 높은 학점이 최우선이었으며, 수업이 끝나자마자 사라지는 학생들로 인해 학교는 텅 비었다. 뉴 밀레니엄이 되었지만 학생들은 더 바쁘게 살고, 더 치열하게 경쟁하며, 세상 돌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시기 나에게 버텨낼 힘을 준 것은 나의 전공, 인류학이었다. 왜냐하면 인류학을 배우면서 사회가 정해 놓은 삶의 방식, 가치, 또는 통과의례를 따르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릴라 이스마엘』은, 누군가가 나에게 인류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이전보다 더 풍성하게 더 많은 이야기를 논리정연하게 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동료 구함 : 세상을 구하려는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함

대니얼 퀸이 13년 동안 써서 1992년에 완성한 『고릴라 이스마엘』의 주요 등장인물은 고릴라 스승인 「이스마엘」과 이름 없는 인간 제자다. 스승은 ‘세상을 구하려는 간절한 열망이 있는’ 제자를 구하는 신문광고를 냈고, 이름이 없는 인간 제자는 스승에게 세상을 구할 비책을 배우러 찾아간다. 인간이 고릴라 스승에게 배운다는 이 설정은 굉장히 의미심장한데,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테넷(tenet)』에서 세상을 구하는 일은 인류의 종말을 알고 있는 미래 인간이 수백 번 넘게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와서 망가진 우주를 없애 빅뱅으로 새 우주가 생겨나게 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인간 제자는 ‘고귀한 야만인’인 멸종 위기의 로우랜드 고릴라 「이스마엘」을 찾아간다. 그리고 곧 이 둘은 인류가 자연을 낭비하고 세상을 망쳐 놓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경고한 것처럼 인류가 주제도 모르고 ‘살아 있는 신’이 될 지경에 이르게 한, ‘속박’의 기원을 찾아 ‘대화’를 시작한다. 소크라테스식 문답으로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제자의 입장에서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총 13장의 의미심장한 대화 속에는 신화, 역사, 문화, 철학, 성경 등에서 가져온 다양한 인류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독자는 어려울 수 있는 학문적 개념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으로 만나게 된다. 예를 들면, ‘고귀한 야만인’은 18세기 형성된 문명사회에 의해 더러워지지 않은 원초적 자연 상태의 순수한 인간을 이르는 말로, 이 책에서는 이미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최초 인류에서부터 써 내려온, 현재도 어디선가 상연(perform)되고 있는 다양한 인류의 이야기 중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그렇다면 이스마엘이 말한 세상을 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테이커(taker)」들이 상연하고 있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무작정 따라할 것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리버(leaver)」들이 상연하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를 상연하자는 것이다. 이 책에서 「테이커」는 이야기 속에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을, 리버는 ‘역할을 맡고 있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테이커」의 전제는 세계가 인간에 속한다는 것이고, 「리버」의 전제는 인간이 세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누가 「테이커」이고, 누가 「리버」일까?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질문을 하도록 하고, 그러면서 한 사람을 넘어 인류의 차원에서 지구와 다른 생물 종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스마엘에게 세상을 구하는 일은 지금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있고 상연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토록 쉬운, 세상을 구하는 방법이 어디 있을까? 자, 우리 함께 세상을 구해볼까요?

신문용 간사 | 아름다운재단

여전히 세상이 궁금하고,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고 지구를 걱정하는 지구인입니다. 앞으로 나눔을 배우고 실천하는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