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많이 변화했다고 하지만, 재벌이나 자산가의 재단 설립에 대해 ‘뭔가 이면이 있는게 아닐까’라는 시선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재벌이 설립한 문화재단을 통해 검은 돈을 세탁한다는 식으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공익재단에 대한 재산출연이나 관련 혜택, 그리고 사용관리에 있어서도 엄격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하면서 종종 의아하다고 느낀 순간들입니다.
“개인이. 자기 자산의 큰 몫을, 공익에 내어놓고, 그 자산으로 오래 오래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왜, 법과 사회의 시선이, 냉정한걸까?”
기부문화연구소의 관련 연구물들을 다시 리뷰하면서 한국의 공익재단의 역사는 ‘조세회피 꼼수로서 악용과의 싸움’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역사가 항상 그렇듯이 절대 악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과거에 그런 일들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로 한국 공익재단관련 이슈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논쟁거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1. 일제시대에서 1970년대까지 : 그냥 뺏기는 것 보다는 좋은 일에 쓰는게 낫지 아니한가?
한국에서 공익재단의 시작은 1939년 양영회, 현재 삼양사의 양영재단이라고 합니다. 초기의 공익재단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부터 장학사업을 통해 고학생 지원 및 인재양성을 담당해 왔습니다. 이 시기에 설립된 재단에 대해서는 별다른 비판이 따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해방 후 1949년 토지개혁이 시작되면서 지주들의 토지가 싼 가격으로 농민들에게 분배되게 됩니다. 일부 지주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토지를 기본재산으로 한 재단법인을 설립하여 육영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좋은 의도였지만, 지주 입장에서 정부시책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도 할 수 없겠지요.
첫 번째 재단특집에서 본 바와 같이 1960년에 구일본민법을 대체하는 민법이 적용되어 재단설립이 다소간 원활해지게 됩니다. 그런데, 1949년 이후로 설립된 육영재단들이 고아사업, 교화사업 등 학교와 다른 사업과의 병행, 재단 운영상 학교회계와 법인회계의 미분리, 이사 수(數)에 대한 제한 규정 흠결에 따른 소수 이사의 독단적 운영, 대표권 제한 규정의 흠결로 누구나 대표행위를 할 수 있게 됨으로 인한 부정행위의 만연 등 폐단이 붉어집니다. 그래서 1963년에 ‘사립학교법’을 제정하여 학교는 학교법인에 의해서만 운영할 수 있도록 분리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1976년 ‘공익재단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다른 공익재단에 대해서는 이사나 감사를 두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을 뿐, 재산관리 및 예결산에 대한 규정이 없었습니다. 물론 이 때 공익법인은 모든 활동에서 주무부서의 관리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설립과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공익재단을 통한 자산가의 재산도피나 조세회피에 대한 신문기사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1974년 9월 17일자>
“명문조항 없는 공익법인 증여재산 유용할 땐 증여세 추징”
……….이는 최근 기업재단들이 문화재단 또는 학교법인 등을 설립. 이 재단에 증여된 재산을 본래 목적과는 다른 데 유용하여 탈세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기 위한 것이다……
– 기사 중 발췌
<경향신문 1974년 10월 29일자>
“8개 재벌의 누탈사건에 비친 양상 속검은 상속, 탈세도 다양”
공익법인 등 내세워 변칙. 너무 지능적이라 끝매듭도 의문
국세청이 지난 71년 이후 그 총수가 사망한 8개 재벌그룹에 대해 실시한 상속세누탈 특별조사에서 거액의 탈세 근거를 잡아내고 있다
상속세추징 예상액이 70억원정도의 거액이라는 데에 충격도 크지만 탈세수법도 여러가지라는 것이다….(중략)
국세청 조사에서 밝혀진 수법을 보면 (1)문화육영 등 공익법인을 설립, 재산을 상속세대상에서 이탈시킨 후 면세혜택을 받으면서 영리를 목적으로 재산과 자금을 변칙운영하는 방법 (2)친척,사원 또는 가공인물에 주식을 분산함으로써 재산을 은닉하는 한편 빈번히 이동시킴으로써 국세청의 추적조사를 방해(3)가공명의로 신탁을 하거나, 주식투자에는 자금출처를 조사하지 않는 특전을 악용, 타회사의 주식을 매입하는 방법(4)사망1년이내의 증여행위는 상속으로 간주하기 때무에 미리 재산을 분산시키는 등 갖가지 방안이 동원되고 있다……(중략)
재벌기업의 상속세 탈세방법은 아주 정교해서 국세청도 완전히 적발했다고 자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상속세 누탈방법을 현행법으로 다룰수가 없는 점을 감안, 정부는 세법개정에 공익법인등에 대한 출연 등의 사후관리를 강력히 규제하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
– 기사 중 발췌
2. 1976년 ‘공익법인법’제정 이후부터 1991년 ‘공익재단 주식출연 한도 부여’까지
: “재벌의 상속세 절감? 혹은 회피? 그러나 사후약방문”
1974년, 75년의 신문 기사에서 자산가, 혹은 기업이 공익재단에 재산을 도피(?)시켜서 세금을 회피하고 그 이후 자산의 운용과 사용을 변칙적으로 하여 결국 개인이익을 취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따라서 1976년 ‘공익법인법’은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자산을 공익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관리감독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게 됩니다.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설립허가를 취소하거나 출연자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도록 정합니다.
그러나 1991년까지는 ‘공익재단에 대한 주식출연 한도 부여’와 같은 출연 자체에 대한 규정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1988년 삼성그룹의 설립자인 이병철 회장의 사망으로 모두가 주목하는 상속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237억원의 재산을 신고하고 상속세만도 150억원을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까지 정확하게 관리되지 않았던 차명재산의 문제와 더불어 ‘공익재단 출연을 통한 조세회피’의 내용이 언급됩니다.
<경향신문 1988년 5월 18일자>
안개속 삼성 비과세 유산
안개속 삼성 비과세 유산. 고 이병철 회장 상속세 신고 안팎. 실사후엔 세액이 더 늘어날 수도. 재산파악 6개월정도 걸릴 듯. 생전의 이회장 “절세”솜씨 돋보여
그동안 세간의 관심을 끌어온 한국최대의재벌 삼성그룹의 창업자 고이병철 회장의 상속세규모가 일반의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1백50억1천8백만원으로 신고됐다.
정확한 상속세액은 신고와는 별도로 세무당국이 세밀한 조사과정을 거쳐 결정될 것이지만 신고규모만으로 보면 우리나라 상속세 납부사상 최고기록이다. 그러나 24개의 계열기업에 종업원 15만명, 총자산 11조5천억원, 연간매출액 17조5천억원이라는 엄청난 기업규모에 비해서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 소액’이라는 것이 일반의 반응이다…..(중략)
그러나 고리회장의 최종상속세액이 어떻게 결정될지는 아직 어느누구도 속단할 수는 없다…(중략)
상속재단이 5억원을 넘을 경우 초과분에 대해서는 72%(방위세 12%포함)의 높은 세율을 물리도록 돼있는 상속세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재벌들은 실제로는 자신들의 재산규모에 훨씬 밑도는 상속세를 내고 있다는 의혹을 국민들로부터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한푼의 소득에 대해서도 꼬박꼬박 세금을 내야하는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이들 재벌들의 상속세 규모가 단순한 호기심 차원 이상일 수 밖에 없으며 고이별철 회장의 가족들도 이런 사정들을 감안하느라 상당한 고심을 해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일반국민들의 더 큰 관심은 아무래도 고이병철회장이 생전에 ‘절세’라는 명목 아래 가족, 친지들에게 재산을 사전 분산시키거나 문화재단 등 공익법인에 돌려놓은 비과세대상 재산의 실제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에 쏠려있는 듯 하다.
우선 주택만해도 고이병철회장은 모두 4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심나의 소유로 된 것은 1채 밖에 없다. 서울 중구 장충동의 대지 8백28평, 건평 1백71평짜리집은 삼성미술문화재단, 또 다른 이태원집(대지 4백89평에 건평 1백44평, 대지 2백43평에 건평 1백44평)도 계열사 또는 타인과의 공동명의로 등기돼 있다…..이회장이 실제 소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상당한 규모의 부동산 역시 대부분 타인명의로 등기가 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생전에 골동품 수집가로 유명했던 이회장은 국보급, 보물급의 지정문화재 50여점을 비롯, 모두 2천여점에 이르는 문화재를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정문화재는 상속세면세대상이며 나머지 골동품도 모두 삼성미술문화재단에 출연돼 있어 과세대상에서 빠져 있는 실정이다.
고이병철회장은 삼성을 키우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나 생전에 수시로 4남 6녀의 자녀들과 12명의 손자, 손녀들에게 재단을 분배, 2세 경영체제를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같은 방식으로 고 이병철회장이 가족, 친지명의로 이전했거나 삼성재단 등 ‘공익법인’에 비과세 출연한 재산이 또 있는지는 재산을 관리해온 측근들 이외에는 알 길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았던 삼성 이별철 회장의 정확한 상속재산규모는 영원함 베일 속에 가려져 결국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을지도 모른다.
– 기사 중 발췌
그럼에도 정부와 세간의 문화재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계속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1991년 8월 18일자 경향신문의 “재벌 문화재단은 재산도피 창구인가” 기사>에서는 “재벌 소유의 문화, 복지, 장학재단 등이 재산의 변칙 상속, 증여에 악용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정부가 이를 방지할 법안마련을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합니다. 여기에는 상속, 증여세 포탈악용을 막고 재벌기업인의 가족과 친척의 문화재단 이사 취임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다고 합니다. <1991년 10월 4일자 동아일보 “기업 변칙 문화재단 추궁” 기사>에서 보면 국감에서 여당의원들이 현대, 삼성가가 설립한 공익재단을 언급하면서 탈세여부를 조사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나옵니다. 같은 해 12월에서 정부가 재벌설립 공익재단을 집중 관리한다는 방침이 발표됩니다.
법의 개정방향은 문제가 없으나, 삼성의 대규모 상속시까지 주식출연을 통한 지분방어나 자산의 실명화와 같은 부분이 미진했었고 그 이후에 관련 조치가 취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이때부터 ‘공익재단’ 혹은 ‘문화재단’이 비리의 온상이라는 이미지 강해진 것 같기도 합니다. 기사들이 매우 자주, 많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이 발견됩니다.
3. 1991년 이후 끊이지 않은 공익재단 관련 의혹 : 공직자, 너마저….!!
1991년 기업 문화재단을 추궁하던 공직자들은 1993년에 공직자 재산 공개요구와 함께 똑같은 이유로 곤경에 처하게 됩니다. 공직자의 재산을 실사하는 일도 잘 되지 않고, <1993년 8월 31일 경향신문 “속출하는 공직자 재단설립, 성금기탁 ‘사회환원이냐 은닉,축소냐” 기사(사진)>에서 “공직자 재산공개를 앞두고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 사이에 장학재단 설립과 대학, 공익 문화재단 등에 대한 성금기탁이 잇따르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됩니다. 서브 타이틀에서 언급된 내용만 해도 규모가 보통이 넘습니다.
“아들 명의 영동 임야 21만평 서울대에 이상득 의원, 공주 일대의 7억대 땅 장학기금으로 정재철 의원, 선산, 사재 2억 보태 재단설립 구체화 금진호 의원”
1991년부터 1993년까지 ‘공익법인 세무관리 강화키로’라는 기사가 여러 번 나고, 그 내용은 대부분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것입니다. 이때까지 공익법인은 공익적 활동을 한다기 보다는 조세회피나 재산은닉의 도구로 비춰지는 모습이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1994년에는 조금 다른 톤의 기사가 나옵니다. <1994년 1월 23일 동아일보 “30대 그룹 중 7곳 공익재단 없어”기사>에서는 ‘대기업들의 사회기여도가 아직은 미약하고 그 범위도 학술장학부분에 편중되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30대 그룹 가운데 공익재단을 설립하지 않은 그룹도 한진, 한화, 동국 등 7개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급합니다. 기업의 재단 설립을 사회공헌으로 보고 촉구하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물론 같은 해 6월에는 한겨레에서 “재벌 공익법인 사익추구 수단”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재벌의 공익재단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입장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4. 공익재단에 대한 두 가지 시선 : 새로운 공익재단의 모델과 끊이지 않은 논쟁
그 후 2000년대가 되면서 공직자나 재벌의 출연에 의존하지 않은 시민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 ‘여성재단’, ‘환경재단’과 같은 재단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기업재단들도 적극적인 공익활동으로 나름의 브랜드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SK행복나눔재단’이나 돌봄 사회서비스를 지원하는 교보의 ‘다솜이 재단’ 등 기업재단에 대한 부정적 시각보다는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커져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2006년 삼성의 X파일 사건 이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헌납한 8천억원으로 설립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대통령 당선 후 전재산 사회환원 공약을 지키기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설립한 ‘청계재단’, 안철수 의원의 ‘동그라미재단’, 그리고 최근의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 후 악화된 여론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의 시작’으로 설립이 발표된 ‘롯데문화재단’ 등 공익재단의 설립 의도에 대한 이견이 있는 재단들을 언급하며 공익재단의 공익성에 대해 의심하는 여론도 없지 않습니다.
결국, 공익재단이라는 것은 개인(들)의 선한 의지/개인적 사정, 사회적/법적환경이 상황적으로 만나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어떤 경우에는 오롯이 선한 의지가 돋보이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선함을 내세운 꼼수로 읽혀지기도 합니다. 이 내용을 굳이 정리해서 살펴본 이유는 “이제 공익재단이 좋다, 혹은 나쁘다로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역사적으로 악용되는 것으로 보였던 시기도 있지만 관련된 법제도적 환경은 합리화되고 있고, 이미 우리는 공익재단의 순기능도 많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설립의도나 운영과정에 의혹이 있는 공익재단이 있다면 전체 공익재단을 폄하하기보다는 그 재단의 문제를 공정하게 풀어갈 수 있도록 법적, 제도적, 여론적 환경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