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질의 사전적 의미 : 풀무로 바람을 일으키는 일.
그리고 또 하나, 성균관대학교 앞 인문사회과학전문 책방. 대장간에 낫이나 쟁기를 만들 때 불이 잘 일어나도록 손이나 발로 푸푸 바람을 넣는 풀무처럼, 총칼로 백성들을 죽이고 정권을 잡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제 목숨대로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바람을 넣어준다는 뜻.
서울도서관에는 아름다운재단에서 기증한 책들로 꾸며진 ‘나눔문화컬렉션’이 있다. 재단에서 도서관에 기부와 나눔, 비영리 관련 책들을 매년 기증하기로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올해에도 도서관에 보낼 책 목록을 만들었다. 책 구매를 하려던 차에 이 일을 담당하는 동료가 ‘이제 온라인 대형서점 말고 동네 책방에서 사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마침, 페이스북에서 한 친구가 ‘풀무질’ 서점에서 영화 관람을 했다는 글을 본 터라 쉽게 풀무질로 구매처를 정할 수 있었다. 전화를 걸어서 구매할 책의 목록을 보낸 후 팀원들과 함께 책방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사실 풀무질은 내가 다니던 대학 앞에 있는 책방이다. 내가 입학한 93년도에 현재 사장님도 4번째 주인으로 풀무질 운영을 맡았다. 당시에는 학교 앞마다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있었다. 얼마 전 기사를 통해 이런 서점들이 이제 모두 없어지고 대학앞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곳이 풀무질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내가 스무살에 처음 만난 그 사장님이 아직도 풀무질을 지키고 있다는 것도. 90년대가 지나면서 대학생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보다 개인의 일에 더 관심이 많아졌고, 이런 책방들은 인문학 서적 대신 고시준비나 토익 준비를 하는 책들로 채워지거나 문을 닫았다. 풀무질은 어떨까? 예전 그대로의 모습일까?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했던 자리에 풀무질은 빛바랜 간판으로만 흔적을 남겨놓고 디저트가게가 운영되고 있었다. 다행히 풀무질은 멀지않은, 바로 맞은편 상가 지하로 이전을 한 것이었다. 이전보다 훨씬 넓어진 공간에서 책방 일꾼인 ‘은종복’씨가 머리색만 바랜 채 23년전 모습 그대로 일을 하고 계셨다. 혹시나 나를 알아볼까 싶어 말을 걸려하니, 업무 전화를 하고 있어 무척 바쁜 모습이었고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다.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 인사를 하니 “어… 아는 얼굴 같은데”라며 반가와 해주셨다.
딩시 과에서 ‘현대철학연구반’ 학회원이었던 나는, 동기들과 세미나 교재를 사러 자주 책방을 들렀었나보다. 학회장이자 선배인 현재 남편은 나에게 연애를 걸려고 그럴듯한 철학책을 잔뜩 사서 안겨주기도 했다. 풀무질은 휴대전화도, 삐삐도 없던 시절에 ‘교신처’였다. 풀무질 옆 기둥에는 항상 커다란 전지가 붙어 있었고, 저녁에는 각종 뒤풀이와 약속들로 빽빽히 채워졌었다. 잘 보이는 자리에 장소와 연락처를 적으려는 작전도 치열했다. 졸업식이 있는 날이면 책방 문까지 전지를 붙여 문을 열 수 없을 정도가 되기도 했다.
사장님은 우리가 발주한 책을 주문하느라 한창 바쁘셨던 거였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왔다고 하니 무척 반가워하시고, 아름다운재단의 후원회원이라고 하셔서 놀랐는데, 우리 재단 외에도 기부하는 곳이 50군데나 된다고 하셨다!
“사장님… 저희에게는 기부 안 하셔도 돼요……” 했더니
“그건 절대 안 되지!”
” ^^;;”
지하로 옮겼지만 훨씬 넓은 공간이라 책을 많이 진열할 수 있고, 월세가 좀 더 저렴해서 사장님은 만족해하시는 것 같았다. 이전보다 고시준비 서적이나 교과서가 많아졌지만, 넓은 공간을 활용해 아이들과 동네 주민이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놀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이 공간은 일부 구청에서 지원하는 마을사업 지원금과 주민들의 벼룩시장 수익금 등으로 꾸려졌다고 한다. 이 공간에서 진행되는 책모임이 무려 7개!!!
“예전에 어떤 학생이 군대 간 사이에 어머니가 방을 정리하다 보니 똑같은 책이 책장에 가득 있었던 거야. 군대에서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 어머니 말씀이 ‘저 풀무질 책 시리즈 언제 끝나냐’고 물어보더래. 무슨 말이었냐면, 예전엔 책을 사면 책표지를 싸줬거든. 이 종이로 말이야. 꺼내보니 모두 풀무질이라고 써 있으니 이게 시리즈 책인 줄 아셨던지. 당시엔 사회과학 서적 중에 제목이 민감한 것들이 있고 검열이 심해서 일부러 책을 싸서 주기도 했거든.”
“어떤 학생은 졸업하고 취직해 들러서는 책장 앞에서 양팔을 쭉 뻗더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하는거야. 후배들 하나씩 나눠준다고. 그리고 나중에 후배들 데리고 와서 여기 책은 아무거나 사도 다 좋다고, 너희들도 꼭 여기서 책 사야 한다고. 그 후배들도 여기서 책을 사고 있지.”
이십 년 전, 한 과에도 몇 개씩 있던 세미나 그룹은 이제 전교를 통틀어 스무 개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 세미나 교재로 사용되었던 사회과학 서적의 판매량도 그만큼 줄었다. 핸드폰의 등장으로 풀무질 기둥에 붙은 연락처 대자보가 쓸모없어지면서 모두의 연락 장소였기에, 모두가 알아야만 했던, 풀무질의 존재를 자체를 모르는 학생들이 이제는 더 많다. 하지만 풀무질은 학교 앞 책방을 너머 비정규직 강사들의 안식처로, 동화작가와 함께 하는 아이들의 책 놀이터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마을 사람들의 협동조합으로 진화하고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풀무질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의 항로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당시 세상 고민을 하게 했던 그 책들과, 모임의 장소를 안내해 주었던 풀무질이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아름다운재단에서 일할 수 있었을까?
모를 일이다. 나도 한번 양팔을 쫙 펴고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책 다 주세요’ 하고는 함께 일하는 후배들에게 책을 나눠주고 싶다.
사람은 여러 가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선택을 잘하려면 슬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학 사회는 지식을 배울 수는 있지만 좋은 ‘슬기’를 얻기는 힘든 곳이다. 살아가는 데 좋은 나침판이 될 수 있는 슬기를 얻으려면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럼 슬기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이 있다. 하지만 책만 많이 보면 완벽주의자로 빠지거나, 자신이 읽은 책에 마치 모든 진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둘째, 글을 자주 써야 한다. 짧은 글이라도 평소에 자꾸 써야 한다. 책을 읽고 나서 짧게라도 느낌 글을 쓰자. “글을 쓰는 사람은 정확한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있다. 적어도 자신이 쓴 글은 쉽게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글로 쓴다면 변화가 없다. 자꾸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새로운 슬기를 알아야 한다. 앞에 말한 책 읽기가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셋째, 얘기를 많이 나눠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쓰더라도 그런 일은 결국 혼자서 하는 일이다. 그것이 올곧은 생각인지, 자신이 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느낌을 주고 있는지 알려면 서로 얘기를 나눠야 한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것만 잘하면 좋은 슬기를 얻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더라도 꼭 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실천’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부지런히 글을 쓰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도 그것이 단지 생각에만 머무른다면 무슨 뜻이 있겠는가. 물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얘기를 나누는 것도 큰 실천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는 또 다른 실천을 요구한다. 바로 ‘진보’의 삶이다. 쌀 한 톨, 풀씨 하나에도 소중한 목숨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삶이다.
< 은종복님의 저서 ‘풀무질, 세상을 벼리다’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p.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