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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 속에서 당돌하게 피는 꽃과 같은 존엄을 위하여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표지의 저자 이름만 보고 일본을 무대로 하여 쓰인 책인 줄 알았다. 나는 일본에 공부 때문에 1년 남짓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딸아이를 일본의 어린이집에 맡겼었다. 그래서 호기심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이야기는 이른바 복지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영국의 최하층 빈민들의 무상 탁아소를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일본인인 저자는 트럭 운전을 하는 무슬림 남편과 함께 다문화 가정을 꾸리고 있으며, 영국 내에서 ‘평균 수입 실업률, 질병률이 최악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인 브라이턴에 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이 지역에 있는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지원센터 내의 무료 어린이집(책에서는 ‘탁아소’라 표현함)에서 보육사로 일하면서 느꼈던 것을 생생하고 수려한 필력으로 전달하고 있다.

Brighton City 전경 (이미지 출처: pixabay.com)

주 대상은 첫째, 알코올, 약물, 한부모 가정, 10대 임신 등 수많은 문제를 가진, 생활보호 대상인 최하층 백인, 둘째, 영어를 잘 못하거나 최하층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주민 가정이다. 영국 사회 가장 변방의 계층, 이른바 언더클래스(underclass)다. 비교적 관대한 복지가 펼쳐지던 <저변 탁아소 시절>이 가고 복지가 축소된 <긴축 탁아소 시절>이 되었을 때 탁아소의 하위 계층 안에서도 서로에 대한 차별과 혐오, 불행이 얼마나 심각해지는지를 탁아소에 오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그들의 삶은 저자가 직접 겪은 논픽션이라고 밝히지 않았다면 실제 이야기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고단하여, 이 때문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복지 시스템이라는 것이 참 촘촘하고 체계적인가 싶다가도, 문제 가정의 아이를 사회복지사가 ‘뺏어가’ 부모와 분리시킨다는 대목에서는 그만큼 삭막하고 무정한 것이구나 싶기도 하였다. 보수당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으로 하위 계층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와 시설에 대한 투자가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또 센터가 지역 주민을 위해 제공하던 수많은 프로그램이 공적 원조가 끊긴 후 운영 할 수 없게 되면서, 탁아소는 결국 문을 닫고 그 공간은 푸드뱅크로 바뀐다. <저변 탁아소 시절>의 부모들은 힘들어도 아이들을 사회복지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싸웠지만, <긴축 탁아소 시절>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포기하려 하고 있었다. 저자와 동료들은 이를 부모에게 더 이상 남은 힘이 없어서 그렇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이 이런 슬프고 아픈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다. 지원이 충분하든 그렇지 않든 이 탁아소를 지켜내는 것들은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이해해 주는 탁아소의 보육사들이었다.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와 문화 충격, 그리고 그들 안에서의 차별―이를테면 영국 최하층의 일탈적 행동들을 혐오하는 이민자 가정의 시선, 아이들만은 중산층으로 보내고 싶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학교든 주거지든 분리의 벽을 넘지 못하는 언더클래스가 겪는 에피소드와 관련된 이야기들. 그리고 거칠고 상한 마음을 행동과 말로써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이 끈질긴 관심과 따뜻한 포용으로 변화하는 이야기들. 이 모든 일들이 두 시기 모두에서 펼쳐진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어떤 상황이든 이들을 포용할 수 있었고, 언제나 사건‧사고가 이어지기는 해도 이들을 지원할 센터나 탁아소라는 커뮤니티와 공간을 영국 사회 내에서 유지시켜 주었던 스탭들의 의식과 자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영국에서 복지시스템은 이들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해 고도로 체계화되어 가지만, 결국 규정과 제도에 갇힌 채 기준과 잣대를 들이댈 뿐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영국의 복지가 ‘일하지 않는 최하층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하고 결국 국가의 먹이로 길들이기만 했으며’, 긴축의 시기가 되어서는 갑자기 ‘더 이상 그것을 줄 수 없으니 혼자 힘으로 일어서라’고 하는 꼴이 되었다고 느껴진다. 저자와 동료들의 이러한 인식은 그들이 아나키스트여서가 아니라 그들이 체득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복지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인식에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결국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은 복지에 대한 비판도, 사람들의 생각 속에 뿌리내린 편견과 차별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도 아니다.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 그들이 끝까지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자존감을 어떻게 최후까지 지키도록 도와줄 것인가’에 대한 호소, 인간성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변에서도 복지보다 존엄이 먼저 실천되길

우리가 실천하는 나눔의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리 주변에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이 아직도 있느냐?’ ‘뭐라도 하면 먹고 살 수 있고 정부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지원해주는 복지의 21세기에, 여전히 빈곤하다면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많아질수록 이들은 더욱 저변으로 밀려나서 숨겨질 수밖에 없다. 그런 곳에 다가서고자 하는 우리는 과연 그들을 보통의 사람들이나 제도가 취하는 태도와는 다르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고 있을까? 그들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 즉 존엄을 느꼈을 때 그들이 다시 자존과 희망을 찾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편견이나 왜곡에 맞서 이들의 존엄을 수호하기 위해 이들을 양지로 드러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역시 모은 기부금을 조용히 전달하면서 그들의 생존과 안위만을 기원하는 소극적 행위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 된다. 복지와 관련된 이들은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김소영 | 나눔문화연구소 / 사회복지학 박사

홈리스 연구, 보호종료아동 등 취약한 청년의 독립과 주거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에서 필란트로피, 한국 나눔의 토대와 관련한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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