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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가난이란 없다”

  광화문 사거리는 수많은 빌딩과 자동차, 목적지를 향해 바삐 오가는 사람들로 늘 분주하다.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던 중, 며칠 전 읽은 책의 폐지 수거 할머니가 떠올라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끌며 광화문 사거리 한 개의 차선을 차지하고 느린 걸음으로 가고 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떻게 나타날까.’   도시 거주자라면 운전하는 차 안에서 또는 골목길에서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반지하 방을 포함한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더욱 자주 등장하는 손수레는 대부분 노인의 손에 들려있다. 간혹 통행을 방해하는 손수레 때문에 갈 길이 바쁜 운전자는 짜증이 났을 것이고, 누군가는 굽은 노인의 어깨를 보고 손수레를 밀어드려야 할지 말지 고민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삶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고민해 볼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소준철 작가는 <가난의 문법>에서 가난한 노인의 문제는 연민과 감동, 그리고 기부와 자선사업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정작 필요한 건 ‘안전한’ 자선활동이 아니라, 현실에 대해 인식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일이라며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책은 폐지 줍는 노인들을 현장에서 관찰하고 인터뷰하여 1만 원도 되지 않는 돈벌이를 위해 무거운 손수레를 끌며 언덕을 오르내리는 노인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코로나 시대와 함께 택배 서비스가 증가하며 수거 및 재가공이 필요한 폐지의 양도 늘어났다. 손수레를 끄는 노인들이 수거해야 할 물량은 더 많아졌으나,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 가고 있는 노인의 수입이 늘어나 가난한 삶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교한 사회서비스 시스템이 자리 잡은 빌딩 숲, 광화문 사거리에는 폐지 손수레가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새벽을 밝히며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 중에는 노인 청소부가 꽤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누군가 해야 할 사회서비스를 ‘가난’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대신하고 있다.   고령화와 은퇴 인구의 증가로 젊은 세대가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있는 시대에 진입하고 있다. <가난의 문법>을 통해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되는, 노인 빈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낙섭 | (전)아름다운가게 사무지원처장

  아름다운가게 창립 모태가 되었던 알뜰시장 봉사와 창립 후 상근자로 20년 동안 활동하였다. 2020년 퇴직한 이후 비영리 조직 운영 경험을 나누는 강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