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취미세요? 기부도 취미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눔문화컬렉션을 위한 한 평 시민 책시장’
지난 12일, 일상 속에서 쉽고 즐겁게 기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도서관과 아름다운재단이 함께 하는 한 평 시민 책시장’ 행사가 그것이다. 아름다운재단은 서울도서관 내에 운영하는 ‘나눔문화컬렉션’의 도서들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시민들은 소장하고 있는 도서들을 가져와 직접 판매하기도 했다. ‘책날다 이벤트’에 참여한 시민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서울도서관에 나눔도서를 기부하는 모습은 이색적이면서도 활기가 넘치는 현장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모두에게 또 하나의 경험이 쌓였다. 어렵지 않고 즐거운 ‘기부’
마음이 따듯한, 그들의 이름은 ‘나눔셀러’
이 날 자신의 중고서적을 가져와서 시민들에게 판매하는 행사에는 많은 학생들이 ‘나눔셀러’로 함께 해주었다. 그 중에서도 박세현 학생(16)은 목동에서 씩씩하게 혼자 왔다. 그것도 전날 밤늦게까지 정성스레 한권씩 예쁘게 포장해서.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잖아요.” 한 번도 힘든 기색 없이 내내 밝게 웃던 박세현 학생은 책을 좋아하고 아낄 줄 아는 사람이 이 책들을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나누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찾아와서, 손수 준비한 정성으로 나눔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마음이 서울광장을 훈훈하게 했다.
사전신청을 통해 행사에 찾은 고양동산초등학교의 양선형 교사는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나들이를 나왔다. “온라인 뉴스레터로 늘 아름다운재단의 소식을 전해 들어요. 종종 캠페인이나 오프라인 행사가 있으면 참여도 하구요. 그래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작은 ‘나눔’이지만 저에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알려주는 거잖아요.“
양선형 교사가 작은 정성을 기부 후 책에 아이들의 이름을 기부자로 쓰려고 하자 아이들이 손사래를 친다. 어떻게 제 이름만 쓸 수 있냐며 대신 6학년 4반 전체의 이름으로 적어내자고 한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정직과 나눔을 늘 가르쳐주려고 애쓰지만, 가끔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낫다는 생각을 해요. 마음이 너무 따듯해지네요.”
그 선생님에 그 제자였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양선형 교사의 따듯한 눈빛과 아이들의 예쁜 마음이 참 많이 닮아있었다.
신나고 즐거운 나눔으로 가득 채운 ‘아름다운 책장’
오후가 되어, ‘책날다 이벤트’가 시작되자 부스 앞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책을 던져서 표시된 선에 맞춰 떨어뜨리면 누구나 서울도서관 나눔도서컬렉션에 자신의 이름으로 책이 기부된다. 여기저기 책이 날기 시작했다. 목표했던 선에 책이 떨어지자 기뻐서 발을 동동 구른다. 아쉽게 선에 못 닿고 떨어지자 아쉬운 탄성이 나오기도 한다. 어른, 아이할 거 없이 표정에는 천진난만한 웃음이 가득했다. 재미있고 즐거운 기부, 일석이조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안양에서 온 초등학생 6학년 윤채운, 송태환 학생은 이벤트에 참여했을 뿐인데 자신들의 이름으로 책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정말 기부가 되는지 여러 번 되묻더니 금세 서로를 보며 뿌듯해한다. 소설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당차게 말하는 이 소년들이, 훗날 작가로 성장했을 때 이 날의 경험을 기억해서 또 다른 나눔을 실천하는 아주 멋진 일이 일어나길 바래본다.
남미의 에콰도르에서 온 참여자도 있다. 경희대학교 글로벌캠퍼스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는 대학생 커플인 가비와 헤라르도는 주말을 맞아 서울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이들은 ‘책날다 이벤트’를 통해 첫 기부를 경험하게 됐다. 게임을 통해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왔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신나고 즐거운 ‘나눔’이 한국에서의 즐거운 추억 중 하나로 더해졌다.
기부는 하루의 일과 중에 하나가 될 수 있다
해외 많은 나라에서 ‘기부’는 생활 속 ‘당연한’ 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에 비해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생활 속 가까이, 일상의 기부문화 보다는 조금 특별한, 때로는 어려운 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기부에 대한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도서관이 그 시작에 물꼬를 텄다.
2004년 한 사업가가 해외에서 직접 수집해온 200여권의 기부 관련 서적과 기금을 아름다운재단에 기증, 기부문화를 확산을 위한 사람들의 뜻을 모아 기부문화도서관이 만들어졌다. 나눔에 대해 알려주는 동화책부터 비영리단체의 전문서적까지. 말 그대로 기부문화에 대해서 차근차근 알려주는 서적들이 총집합되어 있는 것이다. 200여권으로 시작된 기부문화도서관은 이제 500여권의 나눔도서로 채워졌다. 2014년에는 서울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 ‘나눔문화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 날의 행사 역시, 기부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부를 직접 실천해볼 수 있는 장을 마련한 날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았다. 나눔의 기쁨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의 작은 일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부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해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이웃과 무엇을 나누는 경험은 그 행복감이 생각보다도 크기 때문이다.
“때로는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는 것도 큰 행복이다. 난 주고 싶어도 줄 게 없다.” 내가 한 푼 줄까말까 망설이고 있자, 바라나시의 여자 거지가 그렇게 충고했다. 류시화의 <지구별여행자> 중에서.
지금 바로 방 안을 둘러보자. 우리의 책상 위에 혹은 책장 안에,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작은 행복이 숨어있을 테니.
글. 허윤주 | 사진. 김익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