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되면 다음 해의 트렌드가 발표됩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소비자, 새로운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고, 우리는 종종 트렌드를 미래를 예측하는 일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 예측에 맞춰 다음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필란트로피 연구기관인 존슨센터(Dorothy A. Johnson Center for Philanthropy)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2026년 트렌드를 다뤘습니다. 올해로 10번째를 맞은 <11 Trends in Philanthropy for 2026>은 새로운 유행을 예측하기보다, 지난 10년 동안 필란트로피를 변화시켜 온 흐름을 돌아보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2026년 상반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 이 흐름들은 우리에게 어떤 질문으로 다가올까요. 존슨센터의 11개 트렌드를  우리 한국의 비영리조직이 함께 생각해볼 질문들로 바꾸어 읽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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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선의만으로는 부족하다

비영리조직은 오랫동안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신뢰는 단지 선의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존슨센터의 보고서는 시민들이 비영리조직이 좋은 일을 한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과 역할을 하는지는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짚습니다. 우리가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변화가 왜 중요한지 사회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언어와 서사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2. AI의 힘과 영향을 함께 따져봐야 한다

생성형 AI는 비영리 현장에도 빠르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빨리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라, 데이터 편향, 개인정보 보호, 환경적 비용, 책임성의 문제를 함께 살피며 어떻게 공익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입니다. 특히  AI가 만들어내는 영향이 취약한 집단과 소수자에게 더 크게 작용하지는 않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3. 공익활동은 누가 기록하고 전달하는가

공익활동은 기록되고 전달될 때 사회적 의미를 얻습니다. 지역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누가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 그 변화가 왜 중요한지는 미디어와 정보 생태계를 통해 사회적으로 해석됩니다. 그런 점에서 공공·비영리 미디어의 위기는 언론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영리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단체의 홍보 역량뿐 아니라, 이를 기록하고 전달하고 해석하는 공적 정보 생태계가 함께 필요합니다.

4. 정부가 물러난 자리에서 누가 함께 나설 것인가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만으로도, 비영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 재단, 시민, 지역사회가 함께 공익의 문제에 관여하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빈자리를 채우는가가 아니라, 어떤 원칙과 책임 속에서 협력하는가입니다. ‘누구와 협력할 것인가’를 넘어, ‘공공성은 어떻게 지킬 것인가’, ‘협력의 결과는 누구에게 돌아가는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5. 생존과 혁신 사이에서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다

비영리조직은 재정 압박, 인력 부족, 행정 부담, 기술 변화 속에서 기존 방식만으로는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때 혁신은 더 많은 일을 더 빠르게 하라는 요구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한된 자원 속에서 무엇을 지속하고, 무엇을 줄이며,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일에 가깝습니다. 작은 조직이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 협업과 공유 인프라, 지속가능한 인력 운영이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6.기후 행동은 지역과 공동체가 이끌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 의제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폭염과 재난은 주거, 돌봄, 복지, 노동의 문제와 연결되고, 취약한 집단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칩니다. 기후위기를 다룬다는 것은 새로운 의제를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 돌봄, 복지, 지역, 인권 활동 속에서 기후위기의 영향을 어떻게 읽고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7. 정부와 필란트로피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다

비영리조직은 정부의 협력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사회의 독립적인 주체입니다. 정부 지원과 규제는 공익활동의 조건을 만들지만, 때로는 자율성과 비판적 역할을 제약하기도 합니다. 협력하되 자율성을 지키고, 책임성을 높이되 시민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위축시키지 않는 관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8.데이터도 필요하고, 맥락도 필요하다

데이터는 공익활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원이지만, 숫자만으로 현실을 충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조직 수, 기부금 규모, 참여자 수처럼 수치화된 정보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활동의 과정과 관계의 변화, 지역사회 안에서 만들어지는 신뢰를 온전히 읽기 어렵습니다. 
비영리섹터에 필요한 데이터는 단순히 더 많은 숫자가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변화를 함께 읽을 수 있게 하는 자료입니다. 데이터와 맥락을 함께 읽을 때, 우리는 비영리 생태계가 어디에 서 있는지 더 잘 질문할 수 있습니다.

9.비영리 종사자의 ‘안녕’이 위협받고 있다

비영리조직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사람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됩니다. 활동가의 소진, 낮은 보상, 경력 지속의 어려움은 개인의 헌신이나 적응의 문제가 아니라 비영리 생태계의 과제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계속 일할 수 없는 구조라면, 좋은 일 역시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활동가가 오래 일할 수 있는 조건, 조직의 학습과 돌봄 문화, 사람과 조직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투자가 함께 논의되어야 합니다.

10.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기부와 참여도 위험을 마주하고 있다

기부와 공익활동은 때로 사회적 논쟁의 한가운데 놓입니다. 특정 이슈에 기부하거나 공익적 입장을 밝히는 일이 공격과 낙인의 대상이 될 때, 단체뿐 아니라 기부자와 시민도 위축될 수 있습니다.
기부자는 단순한 후원자가 아니라 공적 가치에 참여하는 시민이기도 합니다. 기부와 참여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시민사회 공간이 중요합니다

11. 함께 배우고 연결되는 기부가 확장되고 있다

기부는 점점 더 혼자 하는 선행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결정하고 연결되는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기빙서클, 팬덤 기부, 플랫폼 기부, 고향사랑기부제, 온라인 모금은 모두 기부가 관계와 참여의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디지털 도구는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가집니다. 중요한 것은 연결의 숫자가 아니라, 그 연결이 신뢰와 참여, 공동의 학습으로 이어지는가입니다.

 

11개의 트렌드가 남기는 질문

<11 Trends in Philanthropy for 2026>은 11개의 흐름을 통해 여러 질문을 던집니다.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술은 어떻게 책임 있게 사용할 것인가. 정부와 시민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데이터와 맥락은 어떻게 함께 읽을 것인가. 활동가가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고 참여하는가.

이 질문들의 밑바탕에는 하나의 공통된 물음이 놓여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기 좋은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질문은 해외뿐만 아니라 한국의 비영리조직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기부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시민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비영리조직은 어떤 제도적 환경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새로운 기술은 공익활동의 방식과 책임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부문화연구소가 <기빙코리아>를 통해 기부와 시민참여, 그리고 비영리조직의 임팩트 논의를 살펴보고, Doing Good Index를 통해 한국의 공익활동 환경을 국제 비교 속에서 검토해온 것도 이 질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비영리 법제도와 설립 환경, 고향사랑기부제를 둘러싼 새로운 모금환경, 생성형 AI 활용 현황에 대한 연구 역시 결국 한국 사회에서 좋은 일을 하기 좋은 조건이 무엇인지를 묻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보여주고, 무엇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는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는 답을 내리는 일이기보다, 사회가 더 나은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질문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계신 현장에는 어떤 질문이 가장 크게 닿아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