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한국은 처음부터 기부후진국이 되려고 이런 법을 만들어 운영해온 것일까요?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2010년 12월 발표된 성공회대학교 박영선님의 박사학위논문 “한국 시민사회 관련법의 변화에 대한 연구 – 87년 전후 국가의 대 시민사회 전략과 관계”의 ‘제4장 국가의 사회서비스형 조직에 대한 전략 – 기부금품모집 관련법을 중심으로’에서 정리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1949년 ‘기부통제법’

 ‘기부통제법안’(010141)은 ‘계획없는 기부금모집이 늘어남에 따라 국민의 세원이 점차 고갈되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조세 수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국민의 부담이 늘어나고 있어 이를 통제하기 위한 이유’로 제안되었다고 합니다.

이 법은 법인, 정당 또는 단체의 회원이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회비나 사원, 불당 또는 교회의 경비에 충당하기 위해 신도가 갹출하는 경우를 제외한 모든 기부금품모집행위를 통제하고 그 모집의 허가는 공익사업에 한다고 그 허가의 권리는 내무부 장관에게만 주기로 하는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도 현재의 기부금품법과 비슷한 골자입니다. 이렇게까지 금지를 하는 것을 보니 아마 이때는 지금처럼 기부권유에 당당히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혹은, 거절할 수 없는 방식으로 권유를 했던가요. 1947년 당시 남조선미국정장관대리인 ‘헥믹’대장의 성명 중에 기부모집행위를 “이런 행동은 직접“테로”나 위협이 따루게 되는 것으로 이것은 법률에 대한 직접위반행동인 동시에 엄벌에 처할 수밖에 없는것“이라 하는 것을 보면 기부요청이 요즘과는 사뭇 달랐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때 내무치안위원회에서 “국가기관및공무원을 기부금품을 모집을 할 수 없다”는 조항 삽입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포함되게 됩니다.  

2. 1950-1970년 기부금품모집법에 적용받지 않는 예외조항들 신설 – 국가의 수요에 부응

1950년에는 사원, 불당, 교회와 마찬가지로 교육진흥위해 학부모가 내는 돈도 ‘기부통제법’에 적용받지 않는 예외조항에 포함시키게 됩니다. 이후 1951년에 ‘기부금품모집금지법’으로 바뀌면서 기부금품모집이 가능한 조항을 명기하게 되는데 한 마디로 하자면 ‘국가가 필요로 하는 공익사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나마도 기부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게 되어 있었지요.

  1951년 허가가능사업 – 국제적으로 행하여지는 구제금품이나, 천재, 지변 기타 이에 준하는 재액을 구휼하는데 필요한 금품, 국방기재를 헌남하기 위한 금품, 상이군경의위문 또는 원호를 위한 금품, 자선사업충당하기 위한 금품

  1962년 개정 – 현충기념시설의 설치와 자선사업에 충당하기 위한 금품, 전국적 규모로 사용할 수 있는 체육 시설의 설치를 위한 금품과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릐 파견을 위한 기금, 국제적인 반공기구의 설치위한 금품으로 확대

  1970년 개정 –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참석할 선수의 파견을 위한 금품

 

 

이후로 1995년까지 기부금품모집법은 크게 적용이 되지도, 그렇다고 개정되거나 없어지지도 않은 상태로 방치되게 됩니다. 결국 법이 시작된 후 40여년동안 한국의 민간기부가 활성화될 수 없는 상태로 지속되어 온 것이지요.

저는 “왜 한국은 서구 선진국과 같이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지 못했을까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조건 자체가 이러저러한 기준을 지켜서 기부요청을 하라는 식의 룰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기부금품모집이 금지된 것이 기본이었으니 말이지요. 

 

그리고, 예외적으로 심사를 통해 허가된 사항들은 거의가 국가적 수요에 의한 것이었고, 그 기부금품의 모집은 학교, 지자체, 혹은 그에 준하는 특정 기관(적십자사, 구세군)에 한해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 기간 중 신문기사를 보면, “새마을지도자들이 기부금품 강제징수”(1973년)가 문제가 된다던가 국민성금을 지자체에서 경조사비로 사용하여 발각(1994년)되었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준조세형 기부금은 여러차례 문제제기되고 있습니다.(1984, 1988, 1989년) 게다가 경찰공제회가 92년부터 93년까지 민간에서 모집한 기부금이 73억원이라는 내용은 나름 충격적이기까지 합니다. 애초에 ‘국가기관과 공무원은 기부금품 모집을 못하게 한다’고 정해두었는데 말이지요.

 

결국, 기부통제법에서 기부금품모집금지법으로 이어지면서 무분별한 기부를 금지하고자 하였으나 국가의 필요에 의한 기부에 한해서는 가능하도록 여지를 두었고, 그 결과 지자체나 공무원 중심의 준조세형 기부는 활개를 치고, 그 모집과 사용에 대한 사회적 불신만 높아지게 되었던 것은 아닌지 나름의 분석을 덧붙여봅니다. 

3. 1995년 기부금품모집규제법 – 현재의 기부금품법으로 이어짐 

1995년 ‘기부금품모집규제법’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 절차를 조금 더 세부적으로 명시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후 보고의무 및 어길 시 처벌이 뒤따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8년에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는데, ‘금지’까지는 위헌이지만 모집행위에 대한 감독과 통제는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이후 제기된 헌법소원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제시되는 기준입니다.

1995년 이후 두 번의 개정 후 2006년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로 이름이 바뀌면서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게 되는데, 이것이 과연 규제가 약화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현장 실무자로서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2005년도 국정감사자료집에 보면 월드비전의 ‘기아체험24시간’, ‘연말연시 사랑의 이름으로’, 한국복지재단(현재 어린이재단)과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 EBS의 ‘효’캠페인, MBC‘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등 지금으로서는 매우 좋은 캠페인으로 평가되는 모금캠페인의 허가신청이 반려된 바가 있습니다. 2006년 이후 등록제가 되었다고 해도, 등록이 완료되었다는 해당부처의 답변을 받아야 모금을 시작할 수 있고, 등록이 반려되면 실제로 모금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실무단체 측면에서는 허가제때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 2000년 이후 한국은 연말, 불우이웃돕기, 혹은 재난재해 구호를 위한 기부 외에 일상적인 기부문화가 활성화되어왔습니다. 기존의 많은 비영리단체들도 정부지원금 의존도에서 자체적인 민간모금역량을 키워 기부를 통한 자체 재원마련도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서 ‘기부금품모집법'(허가법이건 등록법이건)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2006년까지 거의 사문화되어 있었고, 2006년 개정 후 소수의 단체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등록신고를 하고 있는 실정이니 말입니다. 국세청에 보고된 기부금 중 1%만 기부금품모집법에 등록되고 있다고 합니다.(물론 대부분의 단체에서 회원들의 기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1천만원 이상을 불특정 다수에게 요청해서 모금하는 경우도 흔치는 않습니다.) 게다가 등록을 하고 있는 단체들로서는 불필요한 행정절차만 많아졌을 뿐, 단체의 모금이 투명해지지도 활성화되지도 않는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2011년 발표되었던 개정안(국회상정되지 못해서 2012년 다시 입법발의될 예정)을 보면,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12월5일을 나눔의 날로 제정하고 이후 1주일을 나눔주간으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약 기부문화의 활성화를 바란다면, 현장 단체의 준용이 용이하도록 법이 현실화되어야하지 않을까요? 나눔의 날, 이런 상징적인 행동말고, 온라인 모금이나 웹사이트에 상시적으로 모금요청하는 것을 기부금품모집법에 준용해야 하느냐는 식의 불필요한 고민만 없어져도, 기부문화가 훨씬 원활하게 성장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은 지자체가 출연하여 재단을 만들고, 그 재단이 지역사회에서 모금을 하는 형태의 움직임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한정된 복지재원으로 진행되던 업무를 재단으로 모두 이관하고, 지역 민간모금을 통해 복지사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아 경조사비로 사용하는 것 같은 문제는 아니지만, 현직 지자체장이 초대하여 ‘이 재단에 돈 좀 내주십시오’라고 했을때, 당당하게 ‘노’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이 때의 기부금이 과연 자발적인 기부금일지…원래 이런 것으로부터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기부금품모집법’이 아니었는지… 다시 떠올려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