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 봤나? ‘사람책’
처음 ‘휴먼라이브러리’, ‘사람책’ 에 관해 들었을때 ‘아, 책 대신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산경험을 얻는 것이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희망제작소가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개최한 로니 애버겔의 강연을 통해 휴먼라이브러리의 핵심은
“표지만으로 책을 평가하지 마세요” 라는 문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책 소통’은 편견극복의 방법
휴먼라이브러리의 창시자 로니 애버겔(Ronni Abergel)은 친구가 칼로 살해당하는 일을 당한 후 ‘Stop the Violence’를 만들어 편견과 고정관념이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알게 되었고, 이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휴먼라이브러리를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편견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미혼모, 노숙인, HIV 감염자 처럼 소수자이기 때문에 강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정치인, 경찰관, 공무원 같은 사람들도 될수 있다. 전세계적으로는 직업과 인근 국가에 대한 편견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데, 한국에서만 드러나는 몇가지 편견은 혈액형(A형은 소심 대마왕일거야)/ 나이(나이든 사람은 보수적이다) / 성역할(결혼할때 남자는 집,여자는 혼수) / 학력 / 소수자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단순하게,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서로 대화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로 휴먼라이브러리를 시작했습니다.
길에서 마주치는 이웃, 직장 동료, 친구와 함께 대화를 나누기에 껄끄러운 주제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걱정이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해답을 알고 싶은 그런 주제들 말입니다.
결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함께 마주 앉아 일상적인 주제가 아닌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오해, 편견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 아니, 상대방을 이해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는 공간. 이런 공간을 어떻게 만들수 있을까요.
우리는 도서관이라는 형식이 적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14 휴먼라이브러리 심포지엄 자료집 중)
성공의 핵심은 단순한 방법론
“편견과 고정관념”을 줄이기 위한 “사람책 소통” 방법론이 70여개국으로 퍼져나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이 단순한 방법론 때문이다. 몇가지 원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사람책과의 대화는 30분동안 한다. (연장을 원하면 합의해 사서에게 허락을 받는다)
- 사람책은타인의 가치기준 때문에 편견을 경험한 사람으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해야 한다. (강의가 아니다.)
- 개인적인 연락처를 주고 받지 않는다.
- 사람책은 집에 가져갈 수 없다. (침대에서 자면서 볼수 없다.)
이 단순한 방법론 덕분에 운영자는 주제에 제약을 두지 않고 다양한 공간에서, 저예산으로도 운영할 수 있다.
휴먼라이브러리 VS 스토리텔링 이벤트
로니 애버겔은 휴먼라이브러리의 의미를 특정 이익집단 선전이나 마케팅을 위해 축소시키거나 (예를 들어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로 이루어진 휴먼라이브러리 행사) 애초의 취지인 편견과 고정관념을 없애기 위함이 아닌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위주로한 ‘스토리텔링 이벤트’식 운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국내에도 사람책 소통방법을 이용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노원휴먼라이브러리, 민중의집의 숨쉬는 도서관, 재기발랄한 청소년들이 만들어낸 서울숲 라이브러리 사례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사실, 국내 사례들의 방식은 ‘원조’ 휴먼라이브러리의 방식이라기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나는 ‘스토리텔링 이벤트’에 근접해 있다.
이유는 덴마크와는 다른 우리나라의 문화와 활동 단체가 처한 맥락이 다르다는 데에 있다.
이번 심포지엄을 위한 국내 조사에서 ‘당신은 어떤 편견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나는 편견이 없는데, 다른 사람은 있다’는 의외의 답이 아주 많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본인이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 면전에서 ‘당신은 이런이런 사람인가요?’ 라고 물어보면서 자신의 편견을 상대에게 드러내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조’ 방식대로 운영해본 실무자들은 사업대상자들에게 맞는 보편적인 사람책 사업(예를들어,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직업군을 만나게 해주는 것을 목적으로)을 하거나 오히려 소수자들을 따로 모아 대출신청을 받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운영방식의 변형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사람책 사업을 통해 지역내의 갈등을 최소화 하고 서로간의 소통을 열정적으로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 또한 스토리텔링 이벤트와 ‘원조’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국내 초청 강연에 응하면서 로니 애버갤이 주최 단체인 희망제작소에 요청한 사항이 인상적이었다.
첫째, 리빙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라는 말을 쓰지 말것. 미국인이 저작권을 갖고 있음.
둘째,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운영할 것. 나도 자원봉사로 강연하겠음.
셋째, 만약 강연을 위해 파트너쉽이 필요하다면, 꼭 공익적 마인드가 기업을 선택할 것.
<관련 글>
- 휴먼라이브러리 창립자 로니 에버겔 초청 강연 및 컨퍼런스 [바로가기]
- 기획기사 1. 편견을 넘어서는 또 다른 방법, 휴먼라이브러리 [바로가기]
- 기획기사 2. ‘휴먼라이브러리’의 모든 것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