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 현장에서 활동가의 번아웃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낮은 임금, 인력 부족, 과도한 업무, 정서적 소진. 활동가의 지속가능성은  비영리섹터의 중요한 과제로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조직에서는 심리상담, 회복 프로그램, 워크숍 등 다양한 지원을 시도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활동가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했지만, 좋은 활동가가 리더로 성장하고 그 경험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는 얼마나 이야기해왔을까요?

활동가의 지속가능성을 개인의 회복력이나 헌신의 문제로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활동가가 오래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의 문제로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해결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비영리 중간지원조직 Third Sector New England(TSNE)는 <Leadership New England 2026: Building a Diverse, Sustainable, and Equitable Leadership Pipeline in the Region’s Nonprofit Sector>에서 활동가의 번아웃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활동가와 리더가 성장하는 경로(Leadership Pipeline)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구조적 문제로 바라봅니다. 특히 유색인종 리더와 중소규모 조직의 리더가 겪는 어려움에 주목하며, 지속가능하고 형평성 있는 리더십 경로를 만들기 위한 조건을 제안합니다.

국가도 환경도 다르지만, 이 보고서에 담인 내용은 한국 비영리섹터에도 낯설지 않습니다. 활동가를 지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좋은 활동가가 오래 일하고 성장하며 다음 세대로 경험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모습

이미지 출처 : pixabay

 

한 사람의 소진은 섹터의 손실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미국 비영리조직이 정부 정책 변화, 재정 불안정, 정치적 환경 변화 속에서도 매일 수백만 명에게 식량과 주거, 교육, 돌봄 등 다양한 공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그 일을 수행하는 활동가와 리더들은 점점 더 큰 압박을 받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단순히 몇몇 활동가가 지친다는 데 있지 않고 경험 있는 활동가는 조직을 떠나고, 중간관리자로 성장해야 할 사람들은 리더 역할을 기피하며, 새로운 세대 역시 비영리 분야를 오래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결국 활동가의 소진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가 성장하는 경로 자체를 좁히고, 조직 안에 축적되어야 할 경험과 전문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는 개별 조직을 넘어 비영리섹터 전체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국의 비영리섹터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참여했던 공익활동가주간에서 열린 대화 테이블에서도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고민은 재정과 운영, 삶과 일의 균형, 번아웃과 소진, 사회적 인정, 역량 강화였습니다. 활동가의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비영리섹터가 함께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보다 구조에 있다

그렇다면 활동가는 왜 오래 일하고 성장하기 어려울까요? 보고서는 리더십 경로를 막는 장벽을 개인의 능력보다 구조적인 환경에서 찾습니다. 

  • 구조적 장벽(Systemic barriers) : 비영리섹터에 대한 만성적인 저투자, 지속적인 재정 불안정,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자금지원 요건, 높은 직원 이직률 등
  • 조직적 장벽(Institutional barriers) : 직원과 리더의 번아웃, 많은 업무를 수행하기에 부족한 조직 역량, 리더에게 새롭게 요구되는 기술, 다양한 이사회 요구를 조정해야 하는 부담 등
  • 사회·정치적 장벽(Socio-political barriers):  현재의 정치 환경과 인종적 편견, 불균형한 지원, 조직의 다양성·형평성·포용성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감정노동 등 

이러한 조건들이 겹치면서 활동가는 조직에 진입하고, 버티고, 리더로 성장하는 모든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활동가의 지속가능성을 개인의 회복력이나 헌신의 문제로만 보지 말고,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좋은 활동가는 혼자 성장하지 않는다

특히 리더십을 개인이 타고난 능력이나 스스로 획득해야 하는 자질로만 보지 않고,  좋은 활동가와 리더가 성장하려면 조직 안에 의도적으로 설계된 경로가 필요하며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안합니다. 

  • 경력 단계별 리더십 개발 기회
  • 멘토링과 코칭
  • 명확한 승진 및 보상 기준
  • 다양한 업무와 역할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 체계적인 승계 계획
  • 선배 리더가 가진 권한과 네트워크의 공유

눈에 띄는 점은 네트워크 역시 리더십의 중요한 자원으로 본다는 점입니다. 의미있는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현재의 리더들이 후배들에게  단순히 업무를 알려주는 것을 넘어, 권한과 관계, 기회에 대한 접근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적 네트워크와 자금지원 네트워크가 최고책임자나 이사회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접근을 넓히고, 리더십 개발과 승계 계획을 조직의 전략에 포함할 것을 제안합니다. 결국 좋은 활동가는 혼자 성장하지 않습니다. 조직이 성장의 경로를 만들고, 선배가 권한과 관계를 열어주며, 동료와 생태계가 그 과정을 함께 뒷받침할 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단과 기부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보고서가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활동가와 조직만을 향해 변화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활동가의 소진과 이직 문제를 수없이 이야기해왔지만, 활동가 개인과 조직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면 비영리조직을 지원하는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보고서에서는 재단과 기부자에게 신뢰 기반 지원을 확대하고, 리더십과 조직 인프라를 정당한 지원 대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합니다.

  • 다년간의 무제한 지원과 일반운영비 지원
  • 조직의 실제 사업비용을 충분히 반영하는 지원
  • 과도한 보고와 행정 부담의 완화
  • 리더십 개발, 동료학습, 네트워킹, 멘토링, 코칭에 대한 투자
  • 조직 인프라와 승계·전환 계획에 대한 지원
  • 형평성 있는 보상체계와 웰니스·휴식에 대한 재원
  • 공동기금과 공동사업 등 경쟁을 완화하는 협력적 지원 모델

특히 한정된 자원을 두고 비영리조직을 서로 경쟁시키는 지원 방식이 아니라, 비영리 리더와 지원기관이 함께 현실을 분석하고, 권력 불균형을 줄이며, 지역사회의 경험에 기반해 지원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뢰 기반 지원은 단순히 사용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 권한을 나누고, 기부자와 조직이 보다 동등한 파트너로 관계를 맺는 일에 가깝습니다.

활동가에게 투자하는 일은 개인의 복지를 지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조직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경험을 축적하며, 다음 세대의 리더를 준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투자라는 점에서 지원의 방식을 재검토하게 합니다. 

한국 비영리섹터가 함께 생각해볼 질문

지속가능한 리더십은 개인의 회복력과 자기돌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비영리 리더를 뒷받침하는 시스템과 정책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비영리조직과 지원기관은 자금과 의사결정 권한을 나누고, 웰빙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만들며, 섹터를 지탱하는 인프라에 형평성 있게 투자해야 합니다.

활동가에게 ‘조금만 더 버티자’는 말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해보입니다. 

좋은 활동가가 오래 일하고, 배우고, 성장하며, 다음 세대로 경험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누구에게 성장의 기회가 열려 있을까요?
조직 안에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분명한 경로가 있을까요?
선배 리더는 권한과 관계, 기회를 후배와 나누고 있을까요?
지원기관과 기부자는 사업만이 아니라 사람과 조직의 성장에도 투자하고 있을까요?

활동가의 지속가능성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좋은 활동가는 개인의 헌신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활동가가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만들고 그 환경에 투자하는 일, 그것이 결국 비영리 생태계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