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조직을 지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질문은 대개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입니다. 어떤 사회문제를 다룰 것인지, 어떤 사업을 선정할 것인지, 얼마를 지원하고 어떤 성과를 확인할 것인지에 많은 논의가 집중됩니다.하지만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과 사람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없다면, 좋은 사업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조직을 운영할 인력과 기반,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할 여유는 어디에서 마련될 수 있을까요?
최근 필란트로피 분야에서는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흐름이 신뢰기반 필란트로피(Trust-Based Philanthropy)입니다. 미국의 Trust-Based Philanthropy Project는 비영리조직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파트너로 바라봅니다.
신뢰기반 필란트로피는 단지 지원금을 더 많이 제공하거나 간섭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지원기관과 비영리조직 사이의 관계와 의사결정 구조를 돌아보고,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로 관점을 넓히는 접근입니다. 그렇다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지원은 기존의 지원과 무엇이 다를까요? 신뢰기반 필란트로피가 제안하는 실천과, 그 바탕에 놓인 관점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신뢰는 권한을 나누는 일
신뢰기반 필란트로피 프로젝트(Trust-Based Philanthropy Project)는 신뢰기반 필란트로피를 실천하기 위한 여섯 가지 원칙을 제안합니다.
- 다년간의 지원(Multi-year Funding)
- 사용처를 제한하지 않는 운영비 지원(Unrestricted Funding)
- 간소한 신청과 보고 절차(Streamlined Paperwork)
- 투명하고 열린 소통(Transparent Communication)
- 지원받는 조직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듣기(Solicit Feedback)
- 지원금 외에도 연결과 학습을 함께 지원하기(Support Beyond the Check)
이 여섯 가지는 단순히 행정 절차를 줄이거나 지원 방식을 조금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비영리조직을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주체로 인정하고, 스스로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의 권한을 함께 나누자는 제안입니다. 즉 중요한 변화는 지원을 바라보는 관점, 기부자 중심의 사고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사고로 전환하는 것 그리고 재단의 문화와 의사결정 구조를 신뢰라는 가치에 맞게 바꾸는데서 시작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결국 신뢰기반 필란트로피는 지원금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보다, 누가 현장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누구에게 의사결정의 권한을 맡길 것인가를 다시 묻는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hatGPT를 활용하여 이미지 재구성(원문:https://www.tarahealthfoundation.org/make-shift-happen-blog/the-deeper-work-of-trust-based-philanthropy)
지원방식의 변화, 조직을 지원하는 일의 의미
이러한 지원 방식은 활동가의 성장, 그리고 비영리섹터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됩니다. 활동가가 오래 일하고 성장하려면 리더십 개발, 동료학습, 건강한 조직문화, 휴식,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운영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은 대부분 개별 사업비만으로 마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뢰기반 필란트로피는 사람과 조직의 성장을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부수적인 비용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으로 바라봅니다. 운영비를 지원하고, 보고 부담을 줄이며, 리더십 개발과 동료학습에 투자하는 일은 단순한 혜택이 아니라 조직이 미션을 지속하고 사람을 성장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운영비 지원, 다년 지원, 신뢰기반 지원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지원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고, ‘사람과 조직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비영리섹터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무엇을 지원할 것인가만큼, 사람과 조직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