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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9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 다목적홀 ‘모이다’에서 <AI와 비영리, 네 가지 얼굴로 마주하는 변화의 파도>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국내 비영리조직 종사자의 생성형 AI 활용 현황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비영리 현장에서 AI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떤 질문과 고민이 생겨나고 있는지를 함께 나누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이날 나눈 발표와 이야기를 각각의 포스팅으로 상세히 공유합니다. 국내비영리조직 AI 활용 현황조사결과. 네가지 얼굴로 마주하는 변화의 파도 |
이날 행사의 첫 순서는 아름다운재단의 <국내 비영리조직 종사자의 생성형 AI 활용 현황 조사> 결과 발표였습니다. 2026년 2월, 비영리 종사자 302명의 응답을 분석한 이번 조사결과발표는 단순한 사용률 통계를 넘어, 비영리 현장에서 AI가 어떤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지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짚어낸 자리였습니다.
10명 중 9명은 쓰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수치는 92.7%였습니다. 응답자 열 명 중 아홉 명 이상이 생성형 AI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절반 이상은 거의 매일 쓰고, 절반 이상은 개인 사비로 유료 구독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쓰는 도구는 챗지피티(88.7%), 제미나이(70.4%) 순이었고, 활용 업무는 문서·보고서 작성(75.4%), 자료 조사·정리(71.1%), 기획·아이디어 발상(68%), 데이터 정리·분석(63%)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직 차원의 도입률은 26.8%에 그쳤습니다. 지원 체계가 없다는 응답은 61.1%. 개인과 조직 사이의 간극이 이번 조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 지점이었습니다.
사용률은 높지만, 깊이는 낮다
그리고 활용 여부, 빈도, 구독 여부, 업무 활용 수를 종합해 ‘AI 인덱스’를 만들었습니다. 전체 평균은 0.60. 그런데 항목별로 뜯어보면 사진이 달라집니다. AI 사용 여부는 0.93로 높지만, 활용 도구 수는 0.39, 활용 업무 수는 0.43에 그쳤습니다. 쓰기는 쓰는데, 한두 가지 도구로 제한된 업무에만 쓰고 있다는 는 뜻입니다. ‘사용률은 높으나 활용의 깊이는 낮은 초기 탐색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쓸수록 기대는 높아지지만, 우려는 남는다
업무 효율성 향상(4.33점), 전문성 보완(4.25점), 조직 혁신(4.05점)에 대한 기대는 활용 수준이 높아질수록 계단식으로 상승했습니다. 쓰면 쓸수록 효용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안 위험(3.90점)과 격차 확대(3.73점)에 대한 우려는 활용 수준과 무관하게 일정하게 유지됐습니다. 많이 써도 이 걱정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기대는 개인의 경험으로 해소되지만, 보안과 격차에 대한 우려는 조직과 섹터 차원의 준비가 있어야 줄어들 수 있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업무 몰입감과 에너지·활력도 활용 수준이 높을수록 유의미하게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외가 있었습니다. 업무 의미감, 즉 사명감은 AI 활용 수준과 통계적으로 무관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를 통해 “비영리의 미션은 AI 영역 밖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격차는 어디서 오는가
AI 활용 수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조직이 아니라 개인의 디지털 도구 개방성이었습니다. 연령대, 디지털 역량도 유의미한 예측 요인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조직의 윤리 가이드라인과 AI 도입 수준은 오히려 활용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직까지는 조직의 준비보다 개인 활동가의 역량이 더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연령대로는 30대(0.65)가 가장 높았고 50대(0.51), 60대 이상(0.45)으로 갈수록 낮아졌는데, 20대(0.60)가 30·40대보다 낮게 나온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단순한 기술 친숙도보다 업무 맥락과 경험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예산 규모별로는 5억 미만 소규모 조직이 가장 낮았고, 100억 이상 대형 조직은 오히려 중간 규모보다 낮게 나왔습니다. 내부 규제와 시스템이 자율적 탐색을 제약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었습니다.
네 가지 얼굴
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 활동가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 아키타입 분석이었습니다. 단순히 ‘많이 쓰는 사람’과 ‘적게 쓰는 사람’을 나누는 게 아니라, 개인 활용 수준과 조직 기반, 기대와 우려의 균형을 기준으로 각 집단의 특성과 필요를 구분해낸 것입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실험형(31.8%)’이었습니다. 개인 활용 수준은 높지만 조직 기반이 약하고, 기대와 우려가 모두 높은 유형입니다. 활동가 개인의 호기심과 탐색 의지로 AI를 쓰고 있지만, 조직의 판단 없이 개인 책임으로 이를 감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역량 교육보다 ‘판단 환경’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전략형(24.2%)’은 개인 활용과 조직 기반이 모두 높은 유형입니다. 네 유형 중 AI 활용에 따른 업무 몰입 효과가 유일하게 통계적으로 확인된 집단이기도 합니다. 현재 비영리 섹터에서 가장 드문 유형인 만큼, 이들에게는 윤리와 책임성을 고도화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습니다.
‘전망형(31.5%)’은 기대가 우려보다 높지만 실제 활용은 제한적인 유형입니다. 개인 역량의 부족이나 구조적 환경으로 인해 아직 AI 활용을 유보하고 있는 집단으로, 조직과 섹터 차원에서 방향성을 제시하고 디지털 리터러시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신중형(12.6%)’은 가장 적은 비중이지만 비영리 섹터에서 가장 중요한 집단으로 꼽은 유형입니다. 우려가 기대보다 크고, 미션과 가치의 부합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집단입니다. AI 사용에 앞서 “이것이 우리의 가치와 맞는가”를 먼저 묻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교육이 아니라 함께 숙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비영리 섹터의 AI 윤리 논의에서 핵심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이 이번 연구의 시각이었습니다.
이날 사례 발표는 이 네 가지 유형에 맞춰 구성됐습니다. 아름다운재단(실험형), 월드비전(전략형), 참여연대(신중형), MYSC(전망형). 각 조직이 AI와 관계를 맺어온 방식은 달랐지만, 고민의 결이 닿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발표를 마무리하며 남긴 문장이 이날 행사 전체의 문을 여는 질문이 됐습니다. “비영리 섹터가 AI 시대에도 지켜가야 할 본질은 도구의 숙련도라기보다, 각 조직의 미션과 가치를 기준으로 기술과의 관계를 설계해 나가는 힘입니다.” 잘 쓰는 방법을 찾는 것보다 한 발 앞서서,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함께 묻는 것. 이날 행사는 그 시작점이 되고자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