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일을 통해 현실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고민하고 돌아온 뒤, 머릿속에 남은 잔상을 비우기 위해서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다큐멘터리의 현실과 드라마의 허구 사이를 오가며,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에 서사와 오락성을 적절히 더한 장르다(최소망·강승묵, 2012). 다큐멘터리는 너무 무겁고 드라마는 때로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머리를 식히기에 적당한 거리감을 준다.
그 중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물론 인간의 복합적인 심리를 자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리얼리티’라는 가상의 무대를 만들고, 그 안에 출연자들을 소비하는 제작 방식에 대한 비판 역시 분명 존재한다. 때로는 콘텐츠 안에서 사람이 지나치게 소비되는 모습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인간의 심리와 에너지가 가장 극적으로 부딪치는 감정이 결국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한 단어에 도달하기까지는 설렘, 호기심, 망설임, 집착, 슬픔, 체념 같은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다. 사람마다 사랑의 모양이 다른 것도, 결국 인간이 가진 거의 모든 감정이 그 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도달하기까지 사람은 꽤 많은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기부를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올리는 단어는 이웃에 대한 관심,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연대, 협력 같은 것이다. 반면 ‘사랑’이란 단어를 전면에 세우는 경향은 다소 적은 것 같다. 나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가치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공익을 위한 자발적 활동을 뜻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의 어원은 사랑(philos)과 인간(anthropos)의 결합이며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애에는 적어도 마주 보는 상대가 있다.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 반면 기부는 내 눈앞에 있지 않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고, 그 행동의 지속성도 고려해야 한다.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기부자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 그럼 우리와 같은 단체는 어떤 역할을 할까? 우리도 그 과정에 있지만 보다 능동적 역할을 하는 ‘조력자’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 이야기가 단순한 소비로 끝나지 않도록, 어떻게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사랑도 기부도 함께 만들어가는 서사다.
사랑이든 기부든, 마음이 움직이는 그 순간까지는 수많은 감정과 장면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 쌓임이 곧 서사다. 좋은 모금 캠페인이 단편적인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서사를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사람들의 관심을 일으키고, 마음을 움직이고,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힘은 서사에서 나온다. 아름다운재단 역시 올해 그런 서사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수상한 복덕방 캠페인 — 매물로 꺼낸 삶의 이야기
주거위기청년 지원사업 ‘수상한 복덕방’은 부동산 매물 소개라는 익숙한 형식을 빌려 청소년부모, 노숙위기청년, 자립준비청년의 실제 주거 상황을 소개한 캠페인이다. ‘수상한 매물’이라는 설정을 통해 청년들의 주거 현실을 보여주며, 집이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동시에 주거 문제를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로 바라보게 한다.
기부가 이루어지는 순간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사랑에는 꽤 많은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망설임과 두려움이라는 반대편의 감정을 모두 돌파해야 비로소 도달하기 때문이다.
기부 역시 다르지 않다. 캠페인을 만나고, 잠시 멈춰 서고, 망설이고, 다시 관심을 갖고, 결국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지나 도착한 한 분 한 분의 마음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그리고 아직 호기심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이야기로 다가가야 할지 수많은 고민과 논의를 하게 된다. 낯선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닿는 능력, 그 사람의 결말을 응원하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기부의 가장 원초적인 출발점일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조직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머물 수 있는 서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한다.
참고문헌 : 최소망, 강승묵, “텔레비전 오디션 리얼리티쇼의 서사 구조 분석: <스타오디션 위대한 탄생>과 <슈퍼스타 K2>를 중심으로,”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12귄, 제6호,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