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주인공이 보여준 이타적 행동과 뜻밖의 동기
*주의: 이 글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가급적 영화를 먼저 보신 후 읽으시길 추천드립니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Project Hail Mary에는 두 주인공인 그레이스(지구인;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함)와 로키(에리드 행성의 외계인)의 이타적 행동이 세 차례 나온다. 로키가 위험에 처한 그레이스를 구하려고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장면이 그 하나이고, 그레이스가 로키가 위험에 처해 있을 것임을 깨달은 후 지구로 돌아가기를 포기하고 로키에게 돌아가는 장면이 다른 하나다. 이 두 장면은 용기와 희생이라는 바탕 위로 전개되는 이타적 스토리의 전형과 가깝다. 내가 눈여겨 본 것은 다른 세 번째 장면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헤일 메리 프로젝트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영화의 배경은 태양이 아스트로파지‘별을 먹는 자’라는 뜻라는 미생물에 감염되어 밝기가 차츰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태양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구에 사는 인류는 이대로 가다가는 길어야 30년쯤 뒤에는 멸망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태양뿐만 아니라 인근 별에서도 똑같이 관찰되는데, 유독 고래자리의 타우 별은 밝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헤일 메리 프로젝트는 태양에서 약 11광년 떨어진 이 별에 우주선을 보내 문제를 해결할 단서를 찾아 지구로 전송하는 프로젝트다. 그런데 당시 기술로는 우주선을 타우 별까지 보낼 정도의 양만 우주선의 연료를 만들 수 있다.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편도 임무인 것이다. 주인공 중 한 명인 그레이스는 그 끝에 죽음이 예정된 이 임무에 어떻게 참여하게 된 것일까.

(이미지 출처: flaticon.com)
영화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그레이스가 우주선 안에서 침낭(?)을 빠져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이 왜,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기억을 하나씩 찾아나가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레이스는 자신이 원래 선발된 대원이 아니었음을 기억해 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우주선에 탑승할 용기를 낸 것일까? 의문을 품으며 계속 생각한다.
그레이스가 끝내 떠올린 기억은 머쓱했다.
타우로 향하는 우주선 발사를 사흘(3일) 앞두고 폭발 사고가 발생해 과학자로서 탑승이 예정된 사람과 그의 예비 후보가 모두 사망해버린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이들을 대체할 탑승자로 그레이스를 지목한다. 그레이스는 (3시간이라는) 오랜 고민 끝에, 죽음이 예정된 임무를 수행할 자신이 없다며 거절한다. 하지만 결국 도망치다 붙잡혀 강제로 혼수상태 유도 약물을 투여받고 우주선에 태워진다……니.
‘지구를 위해 내 한 몸 불사르리라’며 우주선에 탑승하는 식상한 전개는 설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보다는 아마 우주선에 타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을 텐데 —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려 배에 올라탄 이유가 아버지 눈을 띄울 공양미 삼백 석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은 — 그 이유가 과연 뭘까 생각하면서 초조하게 팝콘을 씹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강제로 질질 끌려가서’라니, 사실감이 뚜렷이 드러난 뜻밖의 반전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많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의 선한 동기를 추측하여 칭송하거나, 아니면 그 행동을 통해 바라는 대가가 있을 거라며 의심한다. 사실은 그 중 많은 경우가 ‘어쩌다 보니’ 또는 ‘어쩔 수 없어’ 그 일을 하게 된 어쩌다 이타주의자일지도 모른다.
어쩌다 이타주의자에게 던지는 의심은 화살이 되어 상처를 남긴다. 결단과 용기를 추켜세우는 한편으로, 그 사람의 어깨를 누르는 무게와 두려움과 외로움을 애써 외면하기도 한다. 그 사람의 행동에 감사하고, 행동을 칭찬하고, 혹시 그 사람이 느끼고 있을 무게와 두려움을 헤아리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다.

(이미지 출처: flaticon.com)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지구인 친구가 지구로 돌아갈 연료가 없어 임무가 끝나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외계인 로키는 그레이스에게 자기 우주선의 연료를 덜어 채워주겠다고 말한다. 그동안 억누르고 지냈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이제 살 수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터져 나오자, 그레이스는 울음을 터뜨리며 로키에게 안아달라고 한다.
로키 덕분에 살 수 있게 됐지만, 그레이스는 지구로 돌아가는 도중 문제를 겪는다. 이 문제를 해결한 그레이스는 로키가 같은 위험에 처해 있을 것임을 깨닫는다. 이대로라면 로키가 죽는 것은 물론, 그가 에리드 행성으로 돌아가지 못해 에리드 문명도 멸망할 것이다. 결국 그레이스는 지구로 귀환하기를 포기하고 로키에게 돌아간다 — 지구로는 이 프로젝트의 원래 계획대로 솔루션만 보낸다. 이번에는 연료가 아니라 우주선 안에 남은 식량이 부족해 굶어 죽는 것이 예정된 여행인데도, 그레이스는 로키에게 돌아가기로 — 이번에는 스스로 — 결심한다. 어쩌다 이타주의자로 지구를 출발했던 그레이스는 결국 지구인과 에리드인의 진정한 은혜grace가 된다.